11시 35분 북경공항에 도착했다.
1시간 45분 거리 中原에 들어선 것이다.
이번 여행의 길 안내는 조선족 박명희다.
기차는 다음 날 저녁 출발이다.
국제노동절과 청년절로 해서
일주일간 중국전역이 휴일이다.
열차표도 [흑룡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족 덕분이다.
그가 우리를 민박집으로 연결해 주었다.
외국인은 법에 의해
판띠엔飯삔관賓館, 따루大樓, 따사大廈,
지우띠엔酒店으로 가야한다.
우리 같은 사람은 값싼 짜오따이쉬招待所가 제격인데
이것은 변방으로 나가야 가능하다.
숙소, 비쌀수록 좋다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아파트지하 방공호를 개조하여 방을 만들었다.
방 한쪽으로 하수구가 지나간다.
주방도 없는 지하방.
공동세면장에서 중국인 두 남자가 부추를 씻고 있다.
우루무치를 가기 위해서는
북경서역西站에서 떠나는 20시 20분발
기차[火車]를 타야한다.
천안문에서 버스를 탔다.
사람은 좀 많은가.
짐을 비끼는 데 자리를 선선히 내주는 부부가 있다.
우리를 일본관광객쯤 여긴 눈치다.
입은 멀고 눈이 먼저 따뜻함을 전해주었다.
驛舍는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東으로 갈리고 西로 간다.
우리는 소련이나 평양등 국제열차와
대도시를 운행하는 터콰이特快T69次를 탔다.
잉워硬臥는 3단으로 구성된 침대다.
한 통로에 양쪽으로 모두 6칸.
아침이 되면 개폐식 침대를 붙여 앉아서 간다.
밤사이에 스찌아쫭石家庄역을 지났다.
그곳에는 중국전쟁과 6.25전쟁에서 희생된 묘역이 있다.
邯鄲한단을 지나 중국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시안西安에 닿은 것은 아침 10시.
10분간 정차를 하는 사이에 빵과 삶은 달걀을 샀다.
西安을 지나니 黃河支流다.
5월 보리밭에 벽오동꽃.
나는 창밖 풍경에 도취되어 가고,
가운데 낀 네 살배기 아이가 눈이 익었다 싶은 지,
그 사이를 파고 든다.
손녀를 끼고 있는 漢族출신은
8순고모내외를 데리고
天津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가끔씩 웃어 주면 된다.
그러면 그 쪽에서도 표정이 밝아진다.
미소 이상의 언어는 없다.
낮 시간, 깐수성甘肅省의 寶鷄보계역에 닿는다.
여기서 四川으로 가는 사람들이 갈린다.
칸칸이 66명을 태운 기차는
63Km 느린 속도로 외길 철로를 간다.
민둥서니 산 위에다 농사라니,
소출이 날 것 같지 않다.
노란 유채 밭에 파릇한 밀밭
그리고 민산이 전부인 곳.
돌산가로 石菖蒲가 쪽빛이다.
북경을 떠난 지 12시간 가까이
1,813Km 거리의 蘭州Lanzhou에 이르기 전,
식당 칸으로 갔다.
계란국과 카레를 넣은 감자우육볶음에 공깃밥.
여기에 보름으로 가는 달까지 담았으니 그만이다.
새벽 3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달빛은 교교하다.
隊商들도 어딘가 찾아들어 곤한 잠을 뉘였을 시간이다.
나는 가벼운 흥분마저 느꼈다.
6시가 지나자 기차는 酒泉Jiuquan을 지나간다.
북으로 고비Gobi사막,
남으로 치롄 산맥 사이에 놓인 河西回廊인 이곳은
자고로 북방 유목민족과 漢族간에
충돌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승전보를 받은 漢武帝는 술을 한 병 하사한다.
藿去病곽거병은 그 술을 우물에 부어
고루 마시게 한다.
그렇게 지어진 酒泉이다.
아침 6시 30분.
기차는 새로 지은 嘉峪關Jiayuquan역에 선다.
30여명쯤 짐을 내린다.
사막가운데 은사시나무는 공들여 심은 것이다.
10여리를 지나자 오른쪽으로 성루가 나타난다.
황토빛 황량한 벌판 속이다.
1,372년 설계를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하였던지
城이 완성된 뒤에 예상했던 벽돌 수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고 한다.
祝 西部鐵路提速에 걸맞게
기차는 西北으로 가는 데,
완연한 허허벌판이다.
민가도 없다.
황량한 벌판은 오르막길로 이어져서
반시간 가량을 기고 있다.
北京時 9시 30분,
비로소 해가 돋고 왼쪽으로 전신주가
철로와 이웃해 간다.
검은 구릉, 사막 속 작은 가시더미들이 성글케 자리할 뿐,
초목은 없다.
바람에 날아든 비닐봉지들이 沙漠草에 걸려있다.
아침 10시, 리우위엔柳園역에 닿았다.
여기서 20분간 정차를 한다.
생수가 채워진다.
오는 길에 이곳에서 하차를 해야
敦煌Dunhuang으로 갈 수 있다.
한낮이 되어서도 잿빛 언덕과 광활한 검붉은 땅 때문에
오히려 어둑하다.
여전히 같은 땅 같은 모습.
新疆Xinjiang에 오신 것을 환영한단다.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이곳부터다.
위구르족 돌궐 그리고 흉노라고 불린 소수민족들이
다 이곳을 기점으로 융성부침 했던 곳이다.
지금은 신쟝위구르쯔즈취 新疆維吾爾自治區라는
이름에서 보듯 回族Uighur 들만이 널리 산다.
이들은 이슬람Islam이다.
13시 15분.
여기서부터는 북경과 2시간 時差가 난다.
볼품없는 哈密Hami에서 머문 것도 잠시,
기차는 서쪽으로 향해간다.
13세기에 이곳을 방문한 마르코 폴로는
나그네의 환대를 받으며
그 집의 아내와 어울렸다는 기록을 남긴다.
둔황에서 吐魯番Turpan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
좌측으로 보이는 먼 산줄기가 天山이다.
이 줄기는 기차가 가는 방향과 같이하며
끝없이 이어진다.
구름도 산등에 걸려있다.
없는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
파란 하늘 어딘가에 유목민이 있다는 이야기다.
오후 2시 45분.
78Km 저속으로 기차는 속살 붉은 벌판을 간다.
여기는 돌개바람지역이다.
그리고 두 시간 뒤 서로 기차가 교차한다.
왼쪽은 유전지대. 기름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햇볕에 드러난 산은 돌산이요,
그 너머 구름에 가린 산은 검고도 높다.
평지는 한가롭고 구름은 그 땅을 떠나길 주저한다.
한 시간 뒤 火焰山Huoyan Shan 줄기를 지나간다.
西遊記에 이 산이 등장한다.
산은 붉다.
사막속 타는 입을 열길 없어
목축일 곳을 찾던 隊商들에게 저 산은
화염으로 비추었을 것이다.
이 산은 단일한 산이 아니다.
곳곳이 타오르는 산이다.
벌판속 붉은 언덕 너머는 설산이요,
위로는 청아한 하늘이어서
세상의 조화 이치를
이 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없다.
사막은 끝이 없다.
산들은 老獪노회하다.
하루 종일 나무 한 그루 볼 수가 없다.
물이 없으니 강이 있을 쏜 가.
이 곳에 1,500년 전 交河故城Jiaohe Gucheng이 있다.
高昌故城도 있다.
가서 보면 바람에 부서지고 비에 씻긴 자국만
남아 있을 것이다.
북경을 떠난 지 48시간 만에
기차는 烏魯木齊Urumqi역에 닿는다.
3,774Km거리.
北京時 20시 35분이지만 북경보다 두 시간 늦다.
몽고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신강성의 省都여서 중국다운 모습으로 변해 있다.
백화점과 상가들.
그리고 홍수처럼 흘러가는 차량들.
이곳은 중국 최대의 자치구다.
우리는 역에서 5km거리에 있는
XinJiang BoGDa Hotel 博格達賓館에 들었다.
新疆管區第一招待所가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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