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

[동유럽배낭여행] Turkey 2005-국경검문소

강정순 2006. 3. 30. 20:55

터키국경에 들어왔다.

여기서   Istanbul까지 5시간. 그럼 됐다.
그런데 여기서도 떠날 줄을 모른다.

세관원이 지나갔다.
오늘이 일요일. 9시가 되어야 경찰이 문을 연다.

소리소리 지르며 항의를 했다.
명색이 국제선열차다.

기차가 서면

선다는 안내방송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왜 여기서 두 시간이나 멈춰서있는가.
좋다. 경찰서를 연결하라.

내가 직접 이야기를 하겠다.

승객들은 나에게 묻는다.
온대요? 간답니까?

 
경찰하나가 와선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나만 스탬프를 찍어주고
다시 가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찍어 줘야 할 것 아닌가.
항공기는 틀렸다. 서울로 전화를 시도했다. 
안되겠어. 항공편을 연기해야하겠어.
그런데 대합실속 사람들이 소리를 친다.
기차가 움직이고 있다.
이런.아니 됐어.
.
뛰어서 기차에 올라탔다.
내 바람에 입국심사없이
기차가 출발한 것까지는 좋다.  
conductor를 몰아 세웠다.
어쩔 줄을 몰라하는 그는
항공기 탑승시각에 맞춰

도착할 수 있다는 장담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편도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평원 속의 낮은 키 노란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박은영은 비로소 안도감에  도취하고
나는 소피아 로렌을 떠올렸다.

아주 행복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뭐랬어.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있겠지' 라 하지 않았어.
Maori group이 부른 Hoea ra도 절로 나왔다.
Kuala Lumpur에서 하룻동안 무얼 하고 싶어?
우선 시내로 나가볼까요?
10시간 30분거리 8,384km의 항로 너머에

Kuala Lumpur가 있다.
우리는 벌써 Malaysia를 꿈꾸었다.

 

 

그렇다. 나는 영화적 삶을 꿈꾸어왔다.

추억은 언제나 과거형이며

삶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여행만이 미래형이다. 영화 같은 여행,

The English Patient'나

Out of Africa'속 주인공이 나다.

 

그래 Danish가 생각난다.

구직을 위해 Wien에 온 Denmark인은

공원에서 날씨를  걱정했다.

아직도 공원에서 이슬 잠을 자는가.
그는 수첩속에

세살박이 딸아이 증명사진을 넣고 다녔다.
구례 낭자는 英佛해협을 건넜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연출해준대로 완벽하게

처녀임을  입증해 보였을 것이다.  
영화 The Color Purple'을 연상시키는 

 Nigeria여인은 남편의 입국을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Don Bosco의 주방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투르크여인은

어디서 이 여름 그 가슴을 식힐까.

 

짐을 내 놓고 통로에 섰다.

어디서 물이 뿌려졌다.
어깨쯤에 와 닿는 터키 여인이

손을 씻고 나와 생글거리고 있다.
손자와 함께 있던 대단한 낙천가다.
내가 역사驛舍에서 항의를 하고 있을 때

유일한 원군이 이 사람이었다.      
내 뺨에 두 손을 가져다 댄다.

나는 그들 방식대로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양볼에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그녀 앞에서

Uskudar'a gideriken을 흥얼거려 주었다.

그들 음식을 먹어주고
그들의 민요를 불러 보이는 것은

친근함의   다른 표현이다

 

오른쪽으로 너른 호수가 나타났다.

Istanbul로 가는 길.
다시 오른쪽 구릉에   군부대가 이어지더니

기차가 멈춰 선다.
공항으로 가는 지름길이 이곳이다.
그는 20euro에 우리를 친구 차에 팔고

국제선열차를 세웠다.
승객들에게 나는

갑자기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모두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든다.

소리를 친다.

말하고자 하는 뜻을 왜 모르겠는가.

나는 두 손을 마주 쥐었다.

그리고 공중을 향해 맞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반절의 여행이었지만,

뜻밖에 넘치는 여행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