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트

되돌아 온 봉투

강정순 2007. 3. 19. 07:18

 

     영장이 나왔다. 남편은 아들을 불러들여 기어이 군복을 입게 만들었다. 호주로 유학을 보낼 때는 영주권이 보장되어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군대로 보내는 모정은 이 땅에 사는 어머니들 밖에 모른다. 그런데 유독 내 가슴앓이가 심한 것은 단 하나. 그 이가 입원에 입원을 거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암의 전이를 우리는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다.
예전 같지 않게 피곤해하며 짜증까지 더해 가는 것을 받아들이는데 3년이 걸렸다. 
그 사이에 강원도로 가 있는 아들은 올 10월이면 병장이 된다. 아들의 진급이 더할수록 남편은 헤어나지를 못하였다. 연가까지 당겨썼다. 특별외출도 여러 차례. 이제 작별의 시간이 가까워왔음을 남편도 알았다. 아들은 제 아빠 곁에서 밤을 보내며 나 모르는 부자간 이야기도 나눌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남편은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빈소는 여의도 그 병원에다 마련했다. 생전에 남편과 인연을 맺었던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다녀갔다. 한 낮이 기운 시각, 조문객들이 한 차례 다녀간, 조금은 한가로운 시간, 야전복차림의 군인들이 빈소로 찾아들었다. 허리를 굽혀 군화끈을 풀고 있는 동안 저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중위에 부사관까지였으니 어느 윗전 문상쯤 여겼었다. 그런데 아들의 침상머리 동료까지 함께 들어와서는 정중한 조의를 표해주었다.
 
다섯시간을 달려온 그들의 늦은 점심이 차려지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봉투를 마련했다. 
되돌아가는 길, 저녁때가 되어 그들은 귀대를 할 일이다. 그래서 저녁 값을 넣었는데, 작별을 하는 자리의 아들 편에 다시 들려보냈다. 
젊은 죽음을 애석해 하였음인가, 저녁때 내리던 가랑비는 아침에도 그치지 않았다.
부대라며 아들이 휴대전화를 받았다.
" 어떠냐. 여기는 비가 많이 온다. 오늘 발인인데 비 때문에 고생되겠다."
세상 부모들이 제 자식 군 입대를 기피하는 이 마당에, 더러 소망스럽지 못한 내비리가 지면을 장식하는 이 때에, 하루 쉬는 어린이날 먼 길 마다 않고 병사가족의 죽음까지 챙겨주는 부대원이 있다는 것이 어미된 나로서는 이루 말 할 수 없는 힘이 되었다.

대대장님의 후의에 힘입어 남편은 화장후 공원묘역에 무사히 봉안을 마쳤다.
자식이 귀대하는 오늘, 어느 때보다도 가볍게 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어미된 나보다도 더 마음을 쓰는 대대장이 있는데 더 이상 무슨 걱정인가 
 
안 그런가.             
 
 
                
 

 

 
 
 
NOTE:
  • 메주   2013.08.13 19:13 
대의'를 따지기 前'에....라도(~)
국가'는 내 최고자리'의 모습입니다.

영면'하신 부군'의 진의'가 고스란히 현실속에 용해'되여져
부인의 마음'을 가볍게하는 것'도.... 축복입니다.

저'도 외아들(!) - 외국출생'입니다만,
군대'를 보내기 위해.... 출생후 바로 호적'을 한국'에 올렸었지요.
해병대'를 지원입대'하여... 2년여(!)(~)
자랑스런 해병'임을 본인도 인지합니다.

국가'가 있어야 개인이 있습니다.
아주 멋진 일'을 추진하신 부군'의 세상'에 향기로운 꽃향'을 전합니다....
자제분과 어머님'에게 한국인의 자부심'을 다시한번 느끼며
건강하신 시간'이 펼쳐지옵기도 빌어드립니다.
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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