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동창회는 뭔가 특별한 행사를 꾸며보고 싶어했습니다. 단체로 해외여행을 하면 근사할 것 같다는 제안도 있었습니다. 지난해처럼 하되 이번에는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모시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나는 다른 말을 했습니다. - 학생 수를 채울 수 없어 내년에는 문을 닫게 될지 모른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모교에서 하는 것이 어떻겠어?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반마다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3반이나 되었는데 문을 닫는다니,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문을 닫는다니, 그들은 학교에서 열자는 내 말에 동의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 집은 학교 앞에 있었습니다. 짜장면 집 아주머니도 이발사 아저씨도 나를 책방집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미장원 2층에 있는 사진관에 자주 가곤 했는 데 거기엔 흑백사진에 담긴 읍내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앉아서도 나는 땅끝마을도 보고 남원 오작교 화개장터도 보았습니다. 소풍을 가 반 전체가 찍은 저수 지 八角亭(팔각정)도 사진으로 보면 아주 그럴싸한 곳이었습니다. 그 저수지를 지나 등교를 하는 명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할머니와 둘이서 산자락 십리 길에 살고 있었는데 먼저간 자식이 남긴 손자는 가난한 할머니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니까 60년대 중반 동아전과 표준수련장이 최고의 학습지였던 시절, 나는 전과며 수련장을 몰래 가져다 명이에게 주곤 하였습니다. 12색 크레용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어느 늦가을 오후, 선생님은 명이의 집에 나를 데리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내(川)를 건너며 구절초도 꺾고 연밭 너머에선 클로버 잎도 땄습니다. 급장이 진학을 못하다니 선생님은 명이의 중학교 진학을 할머니에게 직접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중학교는 당치않는 소리였습니다. 졸업과 함께 명이는 자전거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야간 聖中學校(성중학교)에 다녔는데 그 곳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다니는 교회학교였습니다. 학교를 달리하면서 그는 차츰 우리들에게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 동창회에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동나무 아래에다 천막을 쳤습니다. 40주년 기념 사진이 되도록 프랑카드도 걸었습니다. 서울에서 관광버스가 내려오고 부산 광주에서 승용차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교정에는 악수와 웃음이 어우러졌습니다. 우리는 예정보다 1시간 늦게 개회를 했습니다. 앉아서 술잔도 돌아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이 돼서야 그는 나타났습니다. - 저게 누구야? 몇몇이 달려가서 그를 감싸 안았습니다. 그리곤 담임선생님 앞으로 그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덥석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는 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선교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NASA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 영어로 해 봐, 영어로. 그는 못들은 척 또박또박 우리말로 이야기를 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高興(고흥)에 문을 연 우주센타에 참가하기 위해 38년 만에 귀국을 했다는 것입니다. - 그럼 50주년 동창회는 달나라에 가서 해야하는 것 아닌가. 선생님 말씀에 우리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그는 자기 책 한 권씩을 일일이 나눠주었습니다. 내 차례가 오자 그는 "교장선생님한테는 뭔가 특별한 것으로 드려야겠구먼" 하더니 따로 준비한 책으로 [달나라 이야기]를 건네주었습니다. 책갈피에는 색깔이 바랜 네잎클로버가 쪽지 속에 끼워져 있었습니다.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아주 힘이 됐었어. 그 날 밤 우리들은 저마다 우주선을 타고 하늘나라로 가는 꿈들을 꾸었습니다. |
NOTE:
- 메주 2013.08.13 19:07
아! -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이렇듯 향기로운 빛'이 머문다면?....
동창회'란 굴레'는 굴레'가 아닌 꽃밭이 될 것 같습니다...
서울내기'들은 차갑습니다...
시골의 풋풋함'이 밀려나 있는 계산적'인 면'도 엿보이는 것'이지요...
저'도 국민학교 동창회'를 그림자'가 되여 보조해왔었는데
합심'이란게 몇몇'의 반동스러운 의지'들로 무산이 되곤 하더군요...
물론.... 시골'이라 더 똘똘뭉친다... 고 할 수야 없겠지만...
어린시절은 꿈'이고,
삶'의 마지막 숨겨둔 비장카드'처럼 의지로운 곳'이여야 한다... 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귀농'도 아닌 귀촌'으로....
그리고 아직은 오뚜마니 혼자'인 곳'에서의 느낌이
동창회'란 타이틀'과 함께...
훈훈한 미소'로 남겨집니다...
정말... 감동스러운 세상이야기'에 기쁜 새벽녁입니다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에 이렇듯 향기로운 빛'이 머문다면?....
동창회'란 굴레'는 굴레'가 아닌 꽃밭이 될 것 같습니다...
서울내기'들은 차갑습니다...
시골의 풋풋함'이 밀려나 있는 계산적'인 면'도 엿보이는 것'이지요...
저'도 국민학교 동창회'를 그림자'가 되여 보조해왔었는데
합심'이란게 몇몇'의 반동스러운 의지'들로 무산이 되곤 하더군요...
물론.... 시골'이라 더 똘똘뭉친다... 고 할 수야 없겠지만...
어린시절은 꿈'이고,
삶'의 마지막 숨겨둔 비장카드'처럼 의지로운 곳'이여야 한다... 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귀농'도 아닌 귀촌'으로....
그리고 아직은 오뚜마니 혼자'인 곳'에서의 느낌이
동창회'란 타이틀'과 함께...
훈훈한 미소'로 남겨집니다...
정말... 감동스러운 세상이야기'에 기쁜 새벽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