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 둔 것은 나이 때문이었습니다. 말이 명예퇴직이지 결코 명예롭지 않은 퇴직. 그래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산다. 마음을 다그쳐 먹고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1톤 트럭을 사는 일이었습니다. 야채장사라도 하면 설마 처자식 굶겨 죽일까. 사무실에서 부아가 치밀 때면 입버릇처럼 동료에게 해대던 말이 세상에 나와 보니 하나도 쉽지 않았습니다. 요령 없이 사들인 열무는 쉬 시들고 상추는 짓무르기 일쑤였습니다. 아무 동네나 돌아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대단지 아파트나 목좋은 곳은 이미 임자가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자연히 없이 사는 동네를 상대로 돌아다니던 일도 잠시, 그만 좁은 골목에서 사고를 낸 것입니다. 내일은 세 번째 월부금을 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화근이었습니다. 오래된 보안등이 힘없이 기울어지더니 구멍가게로 넘어졌고, 119 구급차가 와서 사람을 싣고 간 뒤에야 그는 정신이 들었습니다. 결국 치료비와 보상을 해주고 나서 그는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아내가 절대로 줄여갈 수 없다며 대든 것은 대입을 앞둔 늦둥이 아들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파트에서 달동네 아래로 자리를 옮겨 간 뒤 아내는 나들이가 잦아졌습니다. 1주일이 다 가도록 말이 없이 지내는 일이 늘어갔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를 채워가며 집안살림을 대신하는 그에게 늦은 시간 귀가를 하던 아내가 말문을 튼 것은 풀 빵을 한 봉지 사들고 들어서면서였습니다. - 다 팔지도 못하고 포장을 거두기에 그냥 다 사왔어요. 그러면서 아내는 한동안 속상해서 말도 안하고 나가고 있는 백화점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파트에 살 때보다 이 동네가 훨씬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아내의 그런 말을 듣고 그는 찬찬히 골목을 둘러보았습니다. 보리쌀이며 팥주머니를 놓고 앉은 약국앞 할머니. 건 멸치를 팔고있는 것은 하체가 부실한 총각이었습니다. 도라지를 까고 있는 아주머니. 전혀 그래 보이지 않은 야채할머니는 골목 제일 안쪽이었습니다. 통 털어 봐야 3만 원어치도 못될 채소를 가지고 얼마를 버실까. 그러면서 아내는 그 할머니에게서 필요 이상으로 야채를 사들고 오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 무슨 사연이 있는지 자식들 이야기는 통 안 하네요. 그 날도 아내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던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내의 힘없는 모습을 보고 눈치를 살피고 있는 데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 병원에 가봐야겠어요 이 며칠 할머니 자리가 비어있어서 오늘은 물어 사는 곳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가서 보니 할머니는 누워있었고 괜찮다고 하였지만 아내는 그게 연탄가스 중독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연탄이라니, MRI촬영에 입원은 아내가 서약하고 나서야 가능했습니다. - 생활보호대상자일텐데 그런 할머니는 나라에서 어떻게 안되나? 아내의 걱정은 1주일간의 병원비용이었습니다. - 인터넷에 사연을 올려 봐. 누가 도와줄지 누가 알아? 그는 아들의 힘을 빌어 인터넷에 할머니의 사연을 올렸습니다. 그 이튿날, 할머니가 사는 달동네를 가보고 나서 그는 자기가 부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며느리로부터 버림받았을 할머니와 친정어머니를 연상하였을 아내의 무한책임을 떠올리며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쓰지 않겠다고 감춰둔 통장 속 돈을 헤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아내는 상기된 얼굴로 귀가를 했습니다. 사정을 해서라도 감면을 받을 요량으로 원무과를 찾아갔더니 뜻밖에도 누가 병원비를 내고 갔다는 것입니다. - 누구라고 밝히지 않으면서 인터넷에서 사연을 읽었노라...하더라나요. 세상에 누가 내 짐을 덜어줬나 모르겠어요. 아직은 그런 사람들이 있어 살아갈 만하지요, 안 그래요? 인터넷에 올려보라는 그의 말에 반신반의했던 아내가 인터넷의 힘이 이렇게 위대한지 몰랐다고 감격해 하는 동안 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
NOTE:
- 메주 2013.08.13 19:32
하긴... 있는者들이 더 무섭더군요...
아니... 언젠가 저도 다른이들에게 그런 모습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만'과 편견! - 잘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이웃'이며,
한 개체'일때.... 서로의 손'이 맞잡는다... 는 것'은 결코 쉽지 않되...
어렵지도 않은 비움'임을 읽고 갑니다.
건강과 안정'이 같이 하시옵소서.
아니... 언젠가 저도 다른이들에게 그런 모습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오만'과 편견! - 잘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이웃'이며,
한 개체'일때.... 서로의 손'이 맞잡는다... 는 것'은 결코 쉽지 않되...
어렵지도 않은 비움'임을 읽고 갑니다.
건강과 안정'이 같이 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