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트

경로우대증

강정순 2007. 3. 19. 06:59
   
남편이 어느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남겨진 것이라고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 둘에 시어머니 그리고 요쿠르트수레차가 전부였습니다. 며느리는 아이들이 학교를 간 뒤 시어머니에게 허드렛일을 맡기고 대리점으로 출근을 합니다. 오전에는 단독주택이 대부분인 산비탈을 돌고, 오후에는 남은 요구르트를 상가와 병원안을 돌며 파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전기밥솥에 담아놓은 시어머니의 점심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동네에 있는 사회복지관에서 무료로 노인들에게 점심대접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곳에 나가 점심도 먹고 자기 또래 사람들하고 말동무도 하며 재미를 붙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날도 주택가에 배달을 끝내고 대로변 비탈길을 내려가던 차였습니다. 복지관 문앞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 다른 한편의 사람은 분명 자기의 시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차양깊은 모자를 눌러쓰고는 잠시 멈춰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터벅터벅 시어머니가 그 자리를 빠져 나간 뒤, 그녀의 눈에 띄인 것은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었습니다.
[우리 복지관에서 무료로 점심을 이용할 수 있는 분들은 65세 이상입니다. 운영상 자격점검을 하오니 반드시 경로우대증을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시어머니 올해 나이가 63세. 오랜 시골생활에서 오는 고생으로 겉모습은 일흔도 더 넘어 보였지만 주민등록증으로는 어림없는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아지조림과 가지나물 그리고 청국장을 가운데 놓고 네 명씩 짝지은 노인들과 맛있는 점심 한끼를 못하고 나오셨을 시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녀의 콧등이 시큰해져 왔습니다. 그녀는 다른 날보다 일찍 일을 끝내고 시장을 들린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날 저녁, 식탁을 보고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낮에도 청국장을 먹었는데 저녁에도 또 먹는구나...맛있겠다.
손주들 옆 모서리를 굳이 당신의 자리라고 고집하던 시어머니의 수저와 젓가락을 가운데로 옮겨 놓으며 그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 자리가 경로우대석이란다. 오늘부턴 할머니 자리야....            

 

 

NOTE:

 

어디가려고 화장을 정성 들여 했는데....
어머니의 초상과 경로우대증이 저를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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