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트

아내의 우산

강정순 2007. 3. 19. 07:14
     


일찍 퇴출을 당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얼마간의 목돈을 기대하며 함께 사직을 당한 우리는, 힘내라...반드시 일어설 것이다...해 가며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졌다. 일종의 정보교환 같은 것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그것마저 시들해진 지 오래 되었다.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집사람과 역할교환을 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이러다가 반상회에서 살림 비결을 강의하는 것 아니유?“ 
냉장고속 찬기에다 이것은 [쌈장] 저것은 [초고추장]하며 물목을 적어 놓아두자 아내는 우회적으로 내 세심함을 꼬집었다. 
차츰 복직은 멀고 창업은 엄두도 못내며, 말 수가 적어진 우리 사이를 파고 든 것은 강아지였다. 
“네가 더 좋아하는구나” 
주중 휴일 오후, 우리는 강아지를 데리고 동네 야산으로 산책을 나섰다. 
“우산을 가져가야 하는 것 아니유?” 
“우산은 무슨” 아내가 하나를 집어드는 걸 보며 나는 확신에 찬 소리를 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전에 소나기가 쏟아졌다
“지나가는 비일 것이다.”
그러면서 정형외과 추녀에서 기다리는데 오토바이에 실린 석간신문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싸인펜으로 적어놓은 배부처의 글씨가 종이위에서 번지는 것을 본 아내가
우산을 펼쳐 신문 위를 가려주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같이 비를 피하던 사람들도 아내의 그런 모습을 기이하게 여기는 눈치였다. 배달부는 나타나지 않았다.
신호등이 3번 바뀔 정도에서 배달부는 나타났다. 40대 초반처럼 보이는 이 남자는 정형외과에 무슨 볼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누가 내 오토바이에 우산을 다 얹어 놓았지?’...하는 어이없는 듯한 표정의 얼굴이, 우산을 집어 드는 집사람을 보고 나서야 붉어진다, 싶은 것은 서로를 알아보는 얼굴 때문이었다.
신문을 가려준 이 뜻밖의 감사함과 처지가 다르게 아는 이를 만났다는 그 어줍음이 한 데 섞인 배달부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먼저 건넜다.
다음 신호에서 길을 건너온 아내가 석간신문을 내밀며 이런 소리를 한다. 
“영등포에서 신학공부를 같이 하던 사람인데
마땅치가 않나보지? 신문을 넣고 있네” 
그의 용기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NOTE:

 

세상'은 적응력'에... 힘'이 보태지는 묘함'이 있지요...
더 먼곳'을 보며... 최선을 현실'에 적응시킨... 신학생'이나...
우산으로... 신문'을 가려주는 자연스런 이웃배려'까지...
좋은글'에 감사드립니다....

상큼한 여름마무리'가 되여지옵소서

             

 

 

'에피소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타와 사막초  (0) 2007.03.19
되돌아 온 봉투  (0) 2007.03.19
하늘나라로 가는 꿈  (0) 2007.03.19
태백으로 가는 길  (0) 2007.03.19
아기 다람쥐  (0) 2007.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