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842km 너머 西安Xi'an으로 간다.
자정이 못되어 떠난 서안행 직쾌열차는
오만가지 역들을 다 거치면서
13시 25에 바오지寶鶴역을 통과한다.
산은 저런 것이다.
이제 익숙해진 나에게 무수한 터널들이
또 다른 볼거리다.
외길 철로는 가던 기차를 여러 번 멈춰 서게 만들었다.
咸陽을 지나면 西安이다.
그 전이 興平역.
오후 3시 반이 지난 시각.
여기서 내려 馬嵬鎭마외진으로 가는
시골버스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우리는 시골교외의 한가한 묘역으로 들어섰다.
무덤은 黑벽돌로 치장되어 있고,
관내에는 석류꽃이 한창이다.
외진 곳이라 일본관광객만 몇 사람 들어섰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였더니
의외라는 듯 놀라는 표정이다.
楊貴妃와 玄宗의 로맨스는
則天武后로 거슬러 올라간다.
얽히고설킨 권력암투 끝에
李隆基가 황제에 오른다.
그가 현종이다.
황제에 오른 현종은 궁중에서 여인들을 몰아내지만
양귀비 때문에
성도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원래 楊貴妃는 玄宗의 며느리.
武惠妃가 죽자 며느리의 미색을 諫하는 者가 있었다.
하여 편법으로 맞아들인 것이
양귀비가 27세나던 해.
그녀는 노래와 춤에 밝아
甲이 지난 현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한 때 귀비는 安祿山과 情을 나눈 사이.
그것이 오히려 亂의 원인이 된다.
현종이 피난길에 올라 마외진에 도착했을 때
병사들은 길을 막는다.
"亂을 일으킨 원인은 貴妃에게도 있다"
황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마침내 自盡할 것을 권유한 뒤
현종은 가던 길을 계속한다.
황제가 떠난 것을 알자
귀비는 석류가지에 목을 매단다.
그녀의 나이 37세.
귀비의 10년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난다.
난이 평정되어 돌아오던 중
무덤을 만들게 한 것이 지금 이 자리다.
관내에는 꽃석류가 한창이다.
장미도 덩달아 형형색색이다.
주변은 그녀의 죽음을 기리는 銘文들이 다양하다.
짧은 문장도 헤아리지 못하는 이 白痴美.
She was born in Yongle永質, Puzhou蒲州.
Being good at singing
and dancing and expert in music as well.
이렇게 적힌 Yang Guifei's Tomb.
묘지위에는 최근에 조성한
그녀의 全身像이 옥돌로 서있다.
당시에는 풍만한 몸매가
미인 축에든 모양이다.
NOTE:
- 장무열 2018.01.06 21:38
1. 침어(춘추시대 서시를 지칭하며 서시가 후원 연못가를 산책할때 연못속에있던 잉어가 서시의 미모에 뻑가서 지느러미질을 잊어서 그만 가라안잤다고 해서 붙인 이름임)
2. 낙안(전한시대 왕소군: 왕소군이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을 갈때 초원에서 비파를 타며 노래를 불렀는데 이모습에 반한 기러기가 날개짓을 잊어 떨어졌다고 하지요)
3. 폐월(후한말기=삼국지에 등장함사도 왕윤의 양녀이던 초선으로 초선이 달밤에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본 달이 챙피해서 구름 속으로 숨었다고 하지요.)
4.수화(당 현종때 양옥정=양귀비로 양귀비가 화청지에 활짝 핀 모란꽃밭을 걷자 모란꽃들이 창피해서 꽃봉우리를 오므렸다고하지요.)
중 서시와 초선은 날씬했을것으로 추측을 하고요. 왕소군과 양귀비는 풍만햇을거라고 추측을 합니다.한나라때 회화에 등장하는 미인들은 풍만하구요. 용문석굴의 대표선수 봉선사동의 노사나불도 분열기인남북조시대에 조성된 윈깡석굴에 비해서 풍만하지요(아울러 ㅇ당나라와 동시대에 제작된 석굴암 본존불도 풍만한 체구이지요)
- 강정순 2018.01.06 21:45
용문이며 운강 그리고 막고굴까지 3대 석굴을 다 둘러보긴 했습니다만
겉만 보고 왔습니다
겉만 보는 데도 17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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