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은 새로운 공업도시다.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혼탁하다.
운전사의 무질서한 운행.
끊임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
사람도 자전거도 차도 반쯤은 넋이 나간 것 같다.
西安高壓開關廳招待所에서
선선히 방을 내 준다.
각 30元짜리 방을 잡고서
양꼬치구이로 식사를 하였다.
간단하게 구내식도 준비가 되어 있다.
2元짜리 세트요리는 죽 한 그릇 호빵 한 개에
절인 달걀하나 그리고 짠지무침이다.
지배인은 다가와 빵 그릇을 내민다.
일본사람쯤 여기는 눈치다.
서안성벽은 중국에서 옛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으뜸이라고 했다.
시내를 벗어나자 보리밭에 밀밭이다.
石榴는 아예 밭을 이루고 있고
꽃은 貴妃를 닮아 있다.
秦始皇陵Qin Shihuang Ling은
야산처럼 보이는 나지막한 동산이다.
차로 지나치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온통 喬木들이다.
마치 산을 오르듯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곳에서 병마용갱은 지근거리다.
65元의 입장료를 내었으니
1,2,3호 모두를 둘러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1974년 봄.
산시성陝西省 臨潼縣임동현에 사는 농민이
마을의 결정에 따라 봄 가뭄에 대비하기 위하여
마을 남쪽에 우물을 파기 시작한다.
우물을 파던 중
뭔가 곡괭이에 부딪히는 이상한 소리에 놀란다.
더 파자 나온 것이 물이 아니라
갑옷 입은 土人이었다.
그리고 구리 놋쇠와 활촉 등이 나왔는데
이것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秦始皇 兵馬俑坑의 2,200년 전 유물인 것이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어느 농촌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최초로 발굴된 부분은
실물크기 병사 도용이
72개씩선 3열 횡대였다.
그 뒤에 40인 종대가 있다.
진시황은 죽은 뒤에도
6천여 명의 근위대가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발굴은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陵에서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군사대형을 이룬 보병, 전차병, 호위병과
행정관들의 인물상이
무기류 갑옷류 농기구류와 함께 발굴되었다.
그래서 현장에 철골을 설치해 둥근 지붕을 덮은
大博物館이 만들어졌다.
한쪽에 진열된 銅마차는
진시황이 타던 마차를 절반으로 축소해 만든 것으로
그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말들은 진짜와 조금도 다름이 없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이 마차의 발견은
秦진나라의 뛰어난 채색화 기법과 청동기술을
짐작케 한다.
서안이 중국 6대 고도의 하나로
1,100년 이상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임을 감안하면
여기가 Silk Road의 시발점이라는 것이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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