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관 50주년 행사를 주도할 새 팀이 결성된 지 열흘이 지나간다.
70년대 至難한 세상사를 몸으로 겪어가며 여기까지 오면서
어찌 이야깃거리가 없었겠는가,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엮어
책으로 펼쳐 내 보자’란 제안이 새 팀에게 주어졌다.
동기생회 결성의 밑돌을 놓았던 고우성 회장이 다시 중책을 맡은 것은
結者解之에 다름 아니다.
이번 50주년 행사는 사실상 67기의 叢花 같은 것 혹은 圖籙일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고우성회장에게 그 직을 되돌려준 것인데
사무총장이면 어쩌랴.
50주년의 벅찬 감동을 앞에 두고 우리 모두 67기 회장이고 사무총장이다.
새 팀이 짜지고 며칠 지나지 않아 高총장이 전화를 해왔다.
신유균씨의 제안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강구가 논의됐으면 하는데
언제 서울 올 때 玉총무와 함께 시간을 가져보자는 소리에
3월에 올라간다
초순, 중순?
중순에 갈게요.
그러자 이번에는 玉형이 전화하길, 연락처를 보강하려고 봤더니 빠진 동기생들이 많아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을 전해왔다.
회장단이 모를 전화번호를 서로 간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를 단톡방에 올려주면 될 터.
어제는 옥총무가 강영걸, 강세환을 시작으로 천철재에 이르기까지 50여 명의 동기생을
단톡방에 초대해 주었다.
오늘이 雨水. 저무는 우리 67기 동기생회에도 생기가 돋는 것 같은
시절은 봄이다.
신유균후보생이 제안한 동기생 문집발행의 건에 대해 말문을 열고자 한다.
62기가 해낸 문집발행을 우리라고 못 해낼,
그러면서 신후보생이 강력 추진 의지를 밝힌다는 소리는 바람을 타고
이곳 구례까지 들려왔다.
멋진 발상이다. 저마다 각자의 인생을 정리할 나이에 초심으로 돌아가 그때를
추억하는 글을 남긴다는 것이 그리 쉬운가.
할 수만 있다면 임관 50주년으로선 가장 멋들어진 일 중 하나가 되리란 데
의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246병동에서 좀 많은 희비가 있었던가. 몸으로 구르고 겪은 5개월은
50년이 흘렀어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저마다 특기를 달리하여 7항보로 일월산으로 혹은 백령도로
누구는 4년이었으나 누구에겐 28년이었다.
그러니 어찌 이야기가 없겠는가.
써내면 삼국지요 읊어내면 판소리가 되고도 남을 이야깃거리들을 저마다 가지고
여기까지 왔다.
혹은 모르겠다. 기억이란 것이 사라질 대로 사라진 건 아닌지.
그 기억 사라지기 전에 문집 하나 펼쳐 내자’라는 신유균후보생의 제안은
그래서 나왔을 것 같다.
뜻은 공감하나 되겠어?
그렇다.
안 될 것 같다는 의견은 나도 듣고 있다.
대영백과사전이 출간을 중지한 지 몇 년 된다.
종이신문도 사양길이고 공중파 텔레비전도 유튜브에 자리를 물려준 지 오래다.
노안이어서 책이 손에 잡히지 않기도 하거니와 책을 가까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사가 되었다.
내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내 마음에 쌓은 돌탑
꿈은 그곳에
아침의 노래
이런 식으로 펼쳐 낸 시집이 있다.
흩어진 책들을 한 데 엮어 [강정순 시문집] 단행본을 나이 70 고희기념으로
펼쳐 낼 생각을 했었다.
생각은 유효하다. 아직 펼쳐 내진 못했다는 이야긴데
내 생각은 이렇다.
고희기념이라고 한들 그게 무슨 기념일 것 같지 않고
요즘은 시를 읽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대전과 유성 간을 젊은 청춘이 속삭이던 우리 항공병학교’를 시작으로
펼쳐 낸 책은 우리들의 리그로 비칠 것이다
펴낸다면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이야기다.
세계가 다르므로 우리 자식들에게 그 책이 이어질 것 같진 않다.
그래도 그 이야기를 묻어두고 가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는가
해서 나는 이런 제안을 해 본다.
희태가 카페지기로 있는 이 ‘공군학사 장교 67기 ’ 카페.
이곳에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 여기다 저마다의 기록들을 남기면 어떨까.
책으로 펼쳐 내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누군가는 3월 12일 입교를 앞두고
전날 미리와 서대전역 건너 2층 여관에 들어 마지막 객고를 푸는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별의별 이야깃거리가 넘치고도 남을 것이어서 우선 그것부터 해 보기를 권한다.
이를테면 [소위 강정순의 74년 백령도의 봄] 이런 제목.
그러면 누가 올린 글인지 언제 적인지 어디인지를 한눈에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이런 식으로 좍 80편 90편이 올라와
이를 어떻게 편집해 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정도가 된다면 좋겠다.
저마다 올려놓은 이야기들을 다들 보면서
카페로 족할지
아니면 책으로 간행할지의 판단은 그다음의 일이다.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후보생 시절부터 배속지 인물 사진도 글과 함께
올려놓으면 64기에서 펴낸 사진첩을 대신할 수 있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크기를 국판으로 하고 표지 디자인은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 등등은
몇 번 책을 만들어 본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페에 글을 올릴 때
-수필 형식이어야 한다는 것
-A-4지 한 면이어야 한다는 것
-사진도 함께 올려놓는다는 것
정도.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다만 여담 한 마디,
어제 玉총무가 단톡방에 초대한 동기생들이
반갑다 여겼더니
여러 명이 나갔다.
동기생이 아닌 분들이 끼어 있어 나간 것은 이해가 가는데
나가서는 안 될 우리 동기생들이
이를테면
강세환,강병래,문수길,장천용,장수진,김인근,채수환,이명선,곽영기
윤삼덕, 백세진, 이광배
이런 동기생들이 나간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동기생들의 단체대화방임을 모를 리 없을 일일 텐데 말이다.
그것도 한두 번 나간 것이 아닌 동기도 있는 줄 안다.
왜일까를 생각해 보자.
나가기의 의도를 다 같이 생각해 보자
이제 동기생들과 더는 교분 필요성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고
동기들의 애경사 소식이면 좋았을 일을
단톡방에 올려진 특정한 정치적 성향의 발언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까쿵소리.
나 잠 안 온다고 새벽 4시 30분에 카톡 올리면 어떻게 되냐, 하고
나의 동창방에 그래 주었는데
우리 단톡방도 일과시간 즈음에만 올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기생이 ‘나가버린’ 동기 중에 있지 않을까.
동기생 간에도 範道가 있는 법이니 설령 죽고 사는 일일지언정 밤에는 띄우지 말고
좋은 글 퍼 나르지도 말고
애경사 소식이나 올려졌으면
玉총무가 애써 초대한 이들이 나가는 일 없지 않았을까
혼자 쓸데없는 생각을 해 봤다.
비 온 뒤 우숫날 아침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3월 11일부터 구례 산수유축제가 3년 만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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