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西大田 [우리다방]에서 同門들이 모였다. 吳南國은 교내방송국에서 함께 일했고 李光培는 副議長으로 익은 얼굴이다.
安형은 입학선배다. 姜世晥 김성근 다 함께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방 보리수 3층에 머물면서 '여름밤의 소야곡'을 신청해 들었다.
귀영점호는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완전무장을 풀었다 꾸렸다, 외출뒤 으레있는 푸닥거리를 치뤘다.
1중대에서 워낙 푸닥거리가 길다보니 장천용이가 일을 벌렸다.
그는 침상에서 내려와 말끔하게 비워놓은 쓰레기 통에다 오줌을 누웠다.
'말대가리'가 역정을 냈다. 자기 수통에다 오줌을 누워놓은 진범이 장천용이다. 그것도 모르고 그 수통의 오줌물을 마시는 성은을 입었기로 장천용의 오줌에 대해서는 유독 '말대가리'가 민감한 처지다.
" 야, 곧 올라올 것인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그 소리에 아랑곳 않고 장천용은 창밖에다 쓰레기통 오줌을 비웠다.
" 누구야 어떤놈이야?"
하후병동쪽에서 구대장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우리 내무반은 2중대 점호가 다 끝날 때까지 원산폭격에 들어갔다.
7월 2일
집합 구령이다. 느긋하게 나가보았다. 오늘은 航校 개교 21주년 기념식. 기지극장으로 가 대열을 갖추고 섰다. 후보생에게 행사는 괴롭다.
대식당에서 姜소위가 설쳐댄다. 下豫중대에서 士官중대로 옮겨온 지금, 악역을 도맡고 있다. 17째週. 구대장들도 角을 세우는 일을 주저하고 있는 판이다.
그러니 잘 온 것 아닌가. 아니 우리 후보생에게는 서슬 퍼런 일이 됐다.
" 친형이냐? 깐깐하다며. 칼이라던데, 별명이 칼少尉래"
오후에는 배구장에 나가 응원을 하였다.
응원태도가 엉망이라며 중대장이 한 마디 한다.
" 初喪나는 줄 알고 있어"
갑자기 사시나무 떨 듯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7월 3일
장교관리선임장교의 특강시간.
" 군대교육 할 게 뭐 있느냐. 말짱 헛것이다, 헛것. 배속 받아 나가면 당장 中上士한테 어떻게 하느냐고 매달려야 하는 판인데……."
매달릴 일이 더하나 생겼다.
大隊夕會에 늦게 참석했다는 것이 이유가 됐다. 5시 10분전. 기지극장에는 이미 다른 과정이 들어서 있고 下侯과정만 우리 뒤다.
" 이제 도착한 과정은 무슨 과정인가?"
" 70과정입니다"
" 석회 끝나고 중대본부 옆에 모인다!"
기지극장 앞에서 우리는 우왕좌왕했다. 햇볕은 길어 눈이 따가웠다.
우리 잘못이 아니지 않는가. 볼멘소리들이 나왔다. 점심 식사 후에 대대장근무후보생으로부터 4시 40분까지 기지극장으로 모이라는 소리는 들어 안다.
8교시 째. 과정근무가 尹少尉한테 건의하자 교관이 화를 냈다.
" 航校는 技校를 어떻게 알기에 수업을 단축해서 석회를 하는가. 수업 사십 오 분 전에는 일체 움직일 수가 없다. 航校는 뭔가. 기껏 한다는 게……."
결국 시간을 다 채운 수업이 됐고 그래서 제 시간에 댈 수가 없었다.
" 저는 이등병의 아내입니다. 듣기로는 중대장이란 지위는 이등병으로서는 감히 상상해 볼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자리라는 것과……"
미찌꼬의 편지는 30년전에 있었던 實話다.
그런 중대장이다. 후보생에게는 하늘같은 사람이다.
7월 4일
제3부 시험. 인사명령기안은 실기다. 선다형은 50문제. 시험 중에 탈이 붙었다.
" 이 줄 중간에……그래 나와"
가운데 앉은 후보생이 나갔다.
" 왜 나온 지 알아?"
" 모릅니다"
그 말이 거슬린 모양이다. 강하게 푸싱이 들어간다.
" 왜 나온 지 몰라?"
" 압니다"
" 왜 나왔어?"
" 고개를 돌렸습니다"
" 어디로?"
" 왼편입니다"
" 몇 번 돌렸어?"
" 한번입니다"
다시 푸싱이 들어간다. 교탁에서 책상 앞까지 밀려난다.
" 한 번 돌려서 내가 불러냈을 것 같은가?"
" 서너 번 돌렸습니다"
" 왜 사람이 솔직하지 못해? 그게 사관후보생인가?"
명예심을 말할 때가 아니다. 그는 지금 재차 課落을 겁내고 있는 것이다.
겁나는 일은 또 생겼다.
角을 세우기 위해 식당 앞에 대기중인 姜소위가 보통이 아니다. 어제부터 晝食 사열이 끝나서인가. 교육특기과정쪽부터 타작을 한다.
" 그게 부동자세야?"
지금 우리는 곧추세울 수가 없다. 워낙 덥다. 학과장에서는 상의탈의다. 방충망이 지급되었다.
특기교육용가방도 이제 나왔다.
7월 5일
행정실무에 관한 특강이 끝나면서 펩시콜라가 하나씩 돌아간다. 뚝! 하고 따는 소리와 함께 입에 와 담기는 감미로움이 어느 때보다도 강했다.
네 명의 課落者가 나왔다. 과정전체가 멸공훈련장으로 이동했다. 특별훈련을 벼르는 모양인데, 주위에 士兵들이 포진해 있어서인지 말을 바꾼다.
" 어떤가. 멸공훈련장을 바라보는 기분이"
말해 무엇 하는가. 感慨無量할 따름이다. 더구나 이 더위 속에 소나기라니.
우리는 가방을 이고 그 비를 피했다.
그런데 집합 전달이다.
" 누구의 집합이냐?"
중대장 집합이란다. 중대장은 지금 한껏 무게를 잡고 서 있다. 그 옆에서 무슨 해병대장교인가. 선글라스속에 두 눈을 감춘 건 姜소위다.
" 비가 온다고 해서 가방을 이고 가는 꼴이란 역대 어느 기수에서도 없는 일이다. 작업복은 내 옷이고 가방은 반납할 것이니까 버려도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
그래서 비를 맞고 서있는 벌을 받았다.
조금씩 소나기가 그친다. 일장 연설도 조금씩 가늘어진다.
7월 6일
학과장은 찜통이다. 上衣를 脫衣한 것으론 되질 않는다. 오히려 교관이 우리 더러 부채질을 하라고 권한다.
부채질을 하면 먼지가 일기 마련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 있던가. 지금 중대장이 그러고 있다. 저녁 10시까지 장구수입을 하였다. 중대장이 벼르고 들어선 점호. 우린 대청소를 해가며 그의 푸닥거리를 대비했다. 11시까지 중대장의 칼 점호가 이어졌다.
7월 7일
식당에 다녀오니 당직사관이 부드럽게 이런다. 내일은 외출이 없다.
우리는 대대장 내무 검사를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완벽할 수도 미흡할 수도 있는 법. 우리 내무반을 그냥 거쳐가는 바람에 수월하게 여겼다. 아래층에서 후보생의 복명복창이 이어지는 것이 그게 아닌 모양이다.
1층에서 고원배후보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 내무검사, 異狀있다.
7월 8일
4시 50분 起床이다. 어제 11시 20분 취침이었으니 잠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오늘 공군종합검열단이 온다고 해서이다. 그래서 외출이 중지 된 것이고 대대장내무검사는 이에 대한 예비점검 같은 것.
침상사이 밑바닥에 배를 대고 누웠다. 암기상태점검에 대비를 하라는 것인데 나는 지금 졸리다.
그런데 그 과실은 바로 나타났다. 당직사관이 哨所에 붙이는 것을 물어왔다.
" 네, 초소명칭입니다"
" 그것 뿐이야?"
" 다른 초소와의 연락방법 및 특별 수칙 일반수칙입니다"
당직사관이 휙 돌아본다.
" 일반수칙도……야?"
잘못 말했다. 땀이 났다.
" 같은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도록"
본부검열을 두고 한 소리이리라.
7월 9일
사령부코스를 돌고 온 아침 구보. 보다 먼 거리를 빨리 뛸 생각은 않고, 벌써 쉽게 하려한다고 벌칙구보를 하였다. 通校를 한바퀴 더 돌고 왔다. 종합검열단이 차리소집발령을 했다고 해서 무장을 꾸리고 대기를 했다.
" 06시 40분 현재 기술고등학교 주변에 무장공비2명 출현. 아군과 접전중. 우군 2명 사상. 전 장병은 머리에 흰띄를 두른 가상 적을 체포할 것. 다시 전달한다……"
카빈총은 지금 윤기가 반짝거린다.
아침부터 땀을 흘려서인지 학과장에서 졸다말다 했다. 쉬는 시간마다 수통에 물을 채웠다. 두통이 다 바닥이 났다. 급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샤워도 못한 상태이니 땀 냄새가 오죽할까.
앞자리에 朴基弘이 졸고 있기에 부채질을 해주었다. 부채가 어디 있는가, 책 받침이 부채다.
그 바람에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 니나 부쳐…….너는 덥지 않어?"
" 괜찮아, 자면 더 덥다는 거 내가 알지"
한번 과락을 하더니 이번에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집에서 청마루에 누워 부채질을 해주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여덟 가족이 함께 살던 그 때 그 시절로.
7월 10일
중대장과 구대장은 여론조사에 신경이 가는 모양이다.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만 진술을 하라고 한다. 모두 告하자고 하지만 그것도 선택된 몇 명만 나갈 수 있다.
7월 11일
관등성명 복창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건너편 下侯兵棟에서 나는 소리다. 어제 오후도 그랬지만 오늘도 기분 좋은 날씨다. 물이 나오지 않아 그게 문제일 뿐, 하늘가 구름을 보노라면 마음이 다 평안해져 온다. 卷積雲이다. 저 비늘구름이 2만 8천 Feet이상에서 피어나는 데 氣流가 심해서 제트기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날에는 산산조각이 난다고 들었다. 상층부는 氷雪이 하층엔 霧雲이란다. 조종사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구름일지라도 지상에서 보면 이처럼 아름다울 수가 없다.
석식 후에 제1연병장으로 나가 태권도를 하였다. 이럴 때면 오윤탁후보생은 神技가 오르는 모양이다.
7월 13일
晝食査閱이 부활이 되었다. 점호장의 낙엽을 쓸어모았다. 며칠 후에 航空大 ROTC들이 온다. 점호전 까지 그곳 내무반에 가서 청소를 하다 왔다. 쓸고 닦고 하는 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7월 16일
멋쟁이 당직사관이다. 아니 달 때문이었으리라. 달은 구름사이로 휘영청 밝다.
달을 보면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나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크게 외쳐보라고 한다.
金鍾哲은 '아버지'라고 외치고 나는 '생명'이라고 외쳤다.
밤내 내무반원들과 이야기로 보냈다.
7월 17일
더위로 잠도 오지 않는다. 그래 해봐, 그래서 [피렌체의 밀집모자]의 이야기를 더 들었다.
덕성여대 MayQueen을 데리고 雪嶽山에 간 이야기. 水原 솔밭 속의 밤길 이야기.
불침번이 들어온다.
" 조용히 자라"
" 잠이 안 온다"
해 봐 어서.
남편이 괌도로 간지 7년. 애를 맡아 가르치는 선생님더러 강원도로 나들이를 가자더란다. 여름학교에 간 아이들 둘이 그런 틈을 만들어 준 것. 비행기를 탔고 鏡浦臺에 가서 부인의 속내 깊은 이야기를 들어가며 황홀했던 여름밤을 털어놓는다.
그 말에 지고 있을 [말대가리]가 아니다.
1학년 때 서울여상 동급생과 딱지를 떼었다는 그다. 빠르다~. 어제 정신여자고등학교 宣敎合唱團이 다녀갔는데, 그 학교 학생과도 양다리였다.
" 한 스므 일곱명은 되지"
7월 18일
3분 내에 다녀와야 하는 변소길. 下豫중대 변소로 갔다. 그 곳도 모두 차 있어 대롱桶에다 오줌을 쌌다. 이삼십 명은 되었지, 아마. 下豫당직사관이 가만있을 사람인가. 집합이다. 사관후보생이 명예심도 없이 그게 뭐냐 한다. 원산폭격이다.
책임은 나에게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金廷燦후보생도 일어났다. 잘못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줌을 누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세 명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7월 19일
중대 旗手가 되었다. 땅바닥에 물이 고여 있다. 간밤에 비가 온 것이다.
마지막 무장구보를 하였다. ROTC도 함께여서 우리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구보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7월 20일
軍史편찬시간. 空軍史 1권을 돌려보았다. 사변후 최초로 F-51을 인수하였고 일본 내 미공군기지에서 훈련을 받은 10인중 한분.
최초의 비행은 7월 3일. 그 후 78회의 출격을 감행한다.
姜少尉 아버지 기록이다.
7월 21일
약과 수통이 그대로 있다. 먹지 않은 것이다. 2번립 불침번더러 교대시 깨워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던데?"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피곤해서 인가.
구대장들이 내무 검사에 들어왔다. 준비 그 자체가 피곤한 것이 내무검사다.
3구대장이 들어왔다. 휴가 신고. 崔秉泰후보생이 복창을 했다. 그런데 문제가 됐다. 나에게 와서 다시 묻는다.
" 휴가 신고. 신고합니다. 후보생 姜貞淳은 7월 9일부터 同月 16일까지 휴가의 허가를 命 받았습니다. 이에 삼가 신고합니다"
화살은 다시 돌아갔다.
" 어디가 틀린 것인지 알아?"
나도 틀렸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일이다.
구대원 기념사진을 찍자는 말에 다들 동의다.
7월 24일
軍番이 나왔다. 60902. 67기 중에서 67번째다. 김용문은 60915.
" 야 이제 軍番順으로 모셔"
그래 [피렌체의 밀짚모자]는 큰소리 칠만도 하다. 그는 60881이다.
선임 군번은 申侑均이다. 그는 육군사병으로 복무하다가 후보생으로
재입대를 한 특이한 兵歷을 가지고 있다.
指紋을 찍었다. 이제 내 몸은 官物이 되어간다.
7월 25일
넉넉해진 시간. 교관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라도 좋다며 한 사람씩 나와서 자신 있는 이야기를 해보라고 한다. 한 후보생은 運命學에 대한 이야기를 소상하게 하고 간다.
나더러 불교를 주문하는 데, 그게 될 법이나 한 소린가.
대신에 석남꽃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라 崔伉은 字가 石南인데, 애인이 있었지만 부모가 금해서 만나지도 못 하다 몇 달만에 죽었다. 죽은 지 여드레만의 밤중에 伉은 애인 집에 나타나 죽은지도 모르는 있는 여자의 반가움을 받았다.
伉은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있다가 그걸 나누어 여자에게 주고 우리 부모가 결혼해도 좋다고 하였다는 소리를 전한다. 둘이 伉의 집에 가는데 항이 잠긴 문을 보고 담을 넘어 들어가고선 아침이 되도록 나오지를 않았다.
그 집 하인은 오늘 伉을 묻을 날이고 그럴 수 없는 일이라며 안으로 들게 한다. 가서 伉의 널을 보니 머리에 꽃가지가 있고 이슬에 젖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여자는 伉이 죽은 것을 그제야 알고 너무 氣가 막혀 숨이 다 넘어가게 되었다. 그 바람에 伉이 깜짝 놀라 되살아나선 또 서른 핸가를 같이 살다 늙어갔다.
未堂의 '석남꽃'에 이 사연이 담겨 있다.
修養錄에 요시다 겐꼬우吉田兼好의 徒然草를 옮겼다.
'봄이 간 뒤에 여름이 오고, 여름이 다 한 뒤에 가을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봄은 이미 그 중턱에서 여름의 숨결을 간직하며, 여름은 미리부터 가을을 예비하고 있으니, 가을이 물러간 10월의 냉기 속에도 봄날의 따스한 햇볕은 쪼여, 풀잎의 푸르스름이 살아나고 매화는 가지 끝에 봉오리를 맺는다. 나뭇잎이 다 진 후에 새싹이 움트는 것이 아니요, 속에서 솟아나는 움직임에 밀려 낙엽 지는 것이니, 生과 病, 老와 死의 理致인들 이와 무엇이 다르리요. 계절에는 미련이 있으되 죽음에는 기약이 없나니, 죽음은 앞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요, 이미 일찍부터 내 뒤를 따르고 있는 것. 사람은 죽음이 있음을 알고도 그 신속 무상함을 모르니 이는 마치 개펄이 얼어도 밀물이 삽시간에 뭍기슭에 차드는 것을 깨닫지 못함과 같도다'
6백 년 전 글이다. 다만 경탄할 따름이다.
7월 26일
간밤에 제1내무반에서 祈雨祭를 지냈다. 除燈 바로 직전에 오윤탁과 趙原鎬 그렇게 祭官이 되어 祭를 올렸다. 침구는 펴져 있고 촛불은 온화하다. 쓰레기 통을 뒤집어 檀을 삼았다. 趙原鎬가 라디에터위에 앉았다. 자지를 내 놓고 돼지모양으로 앉아있어서 모두들 抱腹絶倒를 하였다. 내가 哭을 했다.
옆 내무반에서 킥킥거리며 소리를 죽이는 것은 당직사관을 의식해서다. 비는 오지 않고 볕은 따갑다. 37도라니 이게 무슨 일인가.
趙原鎬 네가 不淨해서 비가 오지 않는다 하였더니 오히려 이런다.
"祭酒(물)를 따라서 제단 위에 올리지 않고 마셔버려서 그런 것이지"
그런가
7월 27일
다시 祈雨祭를 지냈다. 2내무반에다 檀을 차렸다. 내가 담요를 둘렀다. 오윤탁은 팬티만 입고 돼지가 되어 바닥에 누웠다.
절을 하며 呪文을 외웠다.
" 동해 바닷물이 빗물 되어 조선반도에 석 달 열흘 간만 내리소서. 여기 교육사령부에 그저 任官때까지 만이라도 억수로 내리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오윤탁은 '오냐, 오냐' 해가며 꿀꿀댔다.
행정장교근무후보생은 컵에 담긴 물을 빗물처럼 뿌려댔다.
오늘도 점호 후에 祭를 지냈다. 이번에는 트렌치코트를 입었다. 오윤탁 趙原鎬는 흰두건을 두르고 침상사이에 섰다. 東鶴寺에서 찍은 사진을 位牌로 삼아 올려 놓았다. 大劍을 꺼내어 덩실덩실 칼춤을 추었다. 웃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아침이 되자 흐린 날씨더니 낮에는 비로 내린다.
산돼지를 놓고 기우제를 지냈으니 비가 안 올 수 있나.
우리는 아주 만족한 기분이 됐다.
이제 특기교육이 완전히 끝났다. 교육과정수료식을 마쳤다.
7월 28일
이제 정말 마지막일까. 교육검열을 마쳤다. 한꺼번에 긴장이 풀렸다.
검열전 거리넓혀가기가 있었는데 우왕좌왕해버렸다.
중대장의 고개가 기웃해졌다. 대대장근무가 불려갔다.
" 지금 여기가 무얼 하는 곳인가?"
" 네, 교육검열 받는 곳입니다"
" 뭐 하러 왔어?"
" 교육검열 받으러 왔습니다"
" 이게 교육검열을 받는 자세야?"
떨었다. 말투 때문에 더 떨렸다. 검열관은 나에게 비상사태발령 시기를 물었다.
" 네, 국가 비상사태 발생시, 작전비상사태발생시, 천재지변발생시, 기타 지휘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시, 끝"
평가가 내려졌다. 전체적으로 양호. 그러면 부분적으로는 불량하다?
장구일체를 반납했다. 5501541. 함께한 내 銃器도 반납했다.
지참금과 봉급 잔액을 수령했다. 6,225원. 이 돈으로 살 수 있을까.
보아 둔 옷감이 있다.
7월 30일
마지막 외출도 끝냈다. 파견교육생들도 어제 귀대를 하였다. 정보특기 15명이 梧柳洞 2325부대에서 특기교육을 받고 온 것.
"말도 마, 죽었다 살아온 느낌이다"
근무후보생이 된 임범수가 그러고 있다.
네 번의 낙하산 강하훈련에 實尾島 白翎島 西海의 섬이란 섬은 안가본 데가 없다고 한다. 그래 너희들은 공군특공대다.
기지극장으로 가서 剖檢서약을 하였다.
' 본인은 금번 공군에 입대함에 있어 군에서 복무하는 기간 중 戰死 사고 질병으로 인하여 사망하는 경우 공군규정에 정하는 바에 의하여 부검을 시행하여도 무방함을 승낙하는 동시에 이를 엄숙히 서약함'
생각 없이 서명을 했다.
다시 病歷陳述書 서명.
' 본인은 본인의 진술로서 이루어진 위의 기록을 재검토하여 그것이 본인이 아는 한 진실이고 완전한 것임을 인정한다. 본인은 정부기관에 취직 또는 군에 입대 신청하는 절차에 필요한 본인의 병력기록에 관하여 상기한 의사 병원 및 진료소가 그 완전한 진료기록의 사본을 정부에 제공하는 것을 허락 한다'
그러면서 예방주사를 맞았다. 이번에도 성욕억제제인가.
7월 31일
대대장시간도 마지막이다. 요즘은 이렇게 마지막 일들이 많다.
" 뜨거운 햇볕 속에서 한 사람의 落伍者도 없이 끝내준 것을 訓育官과 더불어 기쁘게 생각한다. 候補生에게 이 5개월 간은 길고 무거운 시절로 생각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장교의 像과 흡족하지 못한 점 또한 아쉽게 생각한다.
여하튼 248명이 어떤 期數 못지 않게 훌륭히 교육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 諸官들에게 치하를, 솔직히 말해서 좋았던 期數중의 하나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그러면서 내일 임관후 어떻게 생활할지는 각자의 판단이겠지만 선배장교로서 당부하겠단다.
첫째 성실하라.
둘째 장교로서 품위를 견지하라. 日帝때 장교가 3등열차를 타면 파면을 시킨 例가 있다.
셋째 자립의지를 가지고 성실하게 생활하라
마지막으로 솔섬수범하라.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종일 임관예행연습에 매달렸다.
宣誓라면 신물이 날 정도다.
종합훈련을 끝으로 두 명의 후보생이 귀가를 했다. 그래서 248명이 된 것.
正服에 계급장도 달아놓았다. 관물함을 비우며 짐을 꾸렸다. 베개커버도 반납했다. 모두 興에 넘쳤다. 얼마나 기쁜가. 이 兵棟에서의 마지막 밤.
내일이면 이 침상과도 작별이다. 246兵棟과 함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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