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4km 너머 아지메르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아그라 포트역에 내렸다.
길을 건너면 아그라城 Agra Fort이다.
이 성은 타즈 마할로 상징되는
샤 자한Shah Jahan과 관계가 있다.
印度는 蒙古족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가 壬辰倭亂을 겪고 난 뒤쯤
이곳에 무갈 제국이 들어선다.
무갈Mughal은 아프가니스탄 方言으로
몽고라는 의미다.
제국은 징기스칸의 後裔인 티무르Timur에서
뿌리를 찾았다.
1600년대에 이르러 샤 자한이 王位에 오른다.
그는 대단한 건축 狂이었다.
델리에도 그가 만든 Red Fort가 있다.
인도인은 랄 낄라라고 부른다.
그런데 세째 부인을 너무 사랑한 것이 탈이 됐다.
아니 解産 끝에 죽은 王妃가 문제가 되었다.
그녀를 위해 타즈 마할을 짓겠다.
그는 페르시아 출신의 匠人에게 그 構想을 맡겼다.
멀리서는 이태리와 터키 그리고 중국까지,
내노라 하는 기술자들이
그 시대 최고의 걸작품을 만드는 데 동원됐다.
22년 동안 계속된 工事로 국고는 바닥을
드러내게된다.
민중들의 불만도 커졌다.
이 때문에 아들에게 王位를 簒奪 당하고
아그라 城에 幽閉당한채 죽음을 맞게 된다.
老後를 앞둔 사람들은 이런 러브스토리 때문에
타즈 마할을 떠날 줄 모른다.
그런가. 그렇지만은 않다.
인도인들은 20루피에 타즈 마할을 들어간다.
외국인은 750루피다. 대단한 횡포다.
그러니 피에트라 두라Pietra Dura기법의
文樣을 쉬 지나칠 수가 없다.
匠人들은 대리석에 꽃과 새들의 文樣을 판 뒤
그 홈에 각각의 보석을 박아 넣었다.
터키나 중국 멀리는 러시아에서 그 보석들이 왔다.
純白의 대리석과 어울려 그 보석들은 시시각각
신비로운 빛을 달리해 준다.
따라서 타즈 마할을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 숙소는
값이 다르다.
나는 옥상에 올라 웅장한 지붕을 조망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 이 만큼의 거리에서 타즈 마할을 보며 왕비의 죽음을
사모해 마지않은 사람이 있었지.
야무나Yamuna江가에 가면 그들 사랑의 발자취가
있을지 모른다.
정원사의 안내를 받아가며 강가로 갔다.
그걸 보여주며 20원을 달라고 한다.
부패의 사슬이 끊어지는 날,
인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공원 샤 자한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여행에서 공원만큼 좋은 공간이 없다.
공원은 일정한 테마를 그 속에 담고 있다.
더구나 머무는 여행을 선호하는 입장에서는
공원만큼 좋은 곳이 없다.
장 그르니에가 지은 [섬]도 여기서 덮었다.
누군가 간디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은 기후 때문에 명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프리카 사람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다시 고쳐 말한다.
히말라야 꼭대기 눈 덮인 굴속에 사는 聖人들은
神에 대해서 명상을 한다.
따라서 기후가 영혼을 만든다고 할 일은 아니다.
영혼이 기후를 이용할 뿐이다....
더위를 피해 개들도 공원으로 모여든다.
몇 개의 벤치를 아우를 만큼 거대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개들은 한 낮의 더위를 피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앞발로 땅을 파낸 뒤 배를 깐다.
나무에는 472번이라는 태그가 붙어있다.
나무관리는 체계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도로관리는
문제가 있다.
인도 최대의 외국인 관광지에 힌두어로 길 안내를
해 놓고 있다.
그러니 논니 Lonely planet India도 소용이 없다.
걸어서 가도 되는 거리를
일본인에게서 50원을 받아내는 릭사Ricksaw를 봤다.
그런데 릭사중의 한 사람이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해 왔다.
가정집 음식을 맛본다는 것이 어디 쉬운가.
그는 따뜻한 차이와 갓 구워낸 차파티를 내 놓았다.
그런 뒤 여러 곳의 名品場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도착을 하면 그가 門을 열며 기다린다.
이 손님은 내가 모셔온 사람이다' 라는 신호처럼.
긴 인용이 됐습니다.
2004년 아그라의 타지마할에서 시간을 보낸 뒤의
소회인데
그 후 몇 차례 더 타지마할을 들어서 봤지만
아무래도 처음 들어섰을 때의 놀라움과 눈부심에는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그라에 올 때마다 드는 곳이 타지마할 서문으로 가는
공원입구에서
100m 거리에 있는 Hotel Daawat Palace입니다.
2인실에 1,250Rs ~1,500Rs 하는 곳.
Roof Top Restaurant에서 타지마할과 아그라 포트를
관망할수 있어
다시 찾게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타지마할을 서문으로 들어갈 때 표를 사는 곳이
여기입니다.
외국인은 제일 좌측줄에 서서 현지인도인보다
훨씬 많은 1000R/s를 내야합니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이나 아그라 포트, 파테푸르 시크리
같은 곳의 입장료는
인도고고학연구소와 아그라개발협회에서 책정합니다.
표를 산 뒤 영수증을 내 보이면 생수 한 병과 신발싸개를
하나씩 줍니다
타지마할은 일출 무렵이 가장 분위기 있고 근사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러서인지 이 때가 가장 복잡합니다.
일몰 무렵도 관광객이 선호하는 시간대입니다.
남성과 여성용 줄이 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안쪽 두 줄이 여자
그리고 바깥쪽 줄이 남자
그렇게 서서 차례를 기다립니다.
금요일은 줄을 서지 않습니다. 타지 마할은 매주 금요일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신도를 제외하고는 출입을
불허합니다.
소지품검사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칼이나 라이터같은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런 것만 아니라면 카메라 가방이나 앞가방을
허용합니다
서문의 경우 무료로 짐을 보관하는 곳은 매표소에서
200m 이상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정원을 지나면 서문으로 입장했을 경우 왼편에
4각 건물이 나타납니다.
동문 혹은 남문으로 입장한 사람들도 모두
이 문을 통해 들어갑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이렇게 바로 눈앞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누구는 '영원의 뺨에 맺힌 눈물'이라고 극찬하고
'순수한 만물의 화신'이라 찬사를 아끼지 않는 곳
정작 이를 만든 샤 자한Shah Jahan이 남긴 말은
이렇습니다.
태양과 달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샤 자한의 세번째 부인 뭄타즈 마할 Mumtaz Mahal이
1631년 열 네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게됩니다
그 부인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축물이 타지마할이라는것
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얼마든지 드러난 사실입니다.
당시 샤 자한은 뭄타즈의 죽음에 상심한 나머지
하룻밤이 지나자
머리카락이 잿빛으로 변했다고 하는 것 까지를,
2만명의 노역자들의 결과물이라는 것
그런 것은 이곳에 들어선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단 한가지 공통된 모습이 이것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
이렇게 찍힌 타지마할의 풍경사진은 세계 도처에
차고 넘칩니다.
중문입니다. 저 곳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분수를 작동시키지 않아 수면에 반사되는 타지마할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타지마할은 남문 숙소의 루프 탑 레스토랑에서도 찍을
수 있습니다.
야무나 강의 남쪽 강둑에서 올려다볼수 있습니다.
또 한 군데
타지마할에서 2km쯤 떨어진 곳
아그라 포트Agra Fort가 그곳입니다.
타지마할의 그늘에 가려진 채, 사람들은 아그라에
인도 최고의
무굴왕조 요새가 있다는 것을 잊곤 합니다.
수없이 많은 릭샤꾼들에다 호객꾼,
가이드를 자청하는 사람들에다
길거리 기념품상까지 한데 어우러져 사람을
정신없게 만드는 곳이
아그라'라 소문이 나서 일 수도 있고
좀 가격이 나가서 그렇지
2시간대 Shatabdi열차를 타면
당일여행이 가능한 곳이 타지마할이기 때문인데다
입장료 500R/s도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06:00 뉴델리역출발-08:00 아그라 칸트도착
(열차번호12002)
21:00 아그라 칸트출발-23:30 뉴델리역도착
(열차번호12001)
야무나 강둑에 자리한 이 거대한 붉은 사암 요새는
그 용도나 기능보다는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팔각탑과 궁전에서
샤 자한이 죽기전
8년 동안 이곳에 갇혀
부인의 영묘를 바라보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
그 사실로 하여
위대한 러브스토리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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