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생시절에

1973 - 3월

강정순 2007. 3. 10. 21:01

3월 12일
西大田驛에 내리니 새벽 4시반이다. 待合室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산에 눈이 있어 바람이 차다. 煖爐도 없다. 조금씩 어깨를 붙여가며 앉았다.
西大田劇場 건너 漢城旅館으로 왔다.
2차 시험 때 머물던 곳이다. 2층 방을 내준다. 특유의 旅館냄새다. 
벽지에는 間諜식별요령이 붙어있다.
시간은 화살을 타고 날아간다. 所持品을 챙겼다. 入團채용통지서. 사진과 필기도구. 세면도구. 壯丁小包 포장용으로 쓰일 광목 한 마. 고무줄 2개. 실내화용 흰 고무신. 바늘과 실. 學士學位등록증과 사본. 주민등록증과 圖章. 그리고 일기장.
따뜻한 물로 씻어보는 것도 마지막이다. 몇 시인가.
"일곱시 반이네요"
한 시간이 남았다. 졸업후 열 하루간. 꿈같은 시간이 그 장막을 거두려 하고 있다.
技敎團 正門. 金南洙하고는 厚岩洞兵務廳에 志願書를 함께 냈다. 이제 어떻게 되는가.  줄줄이 들어간 부대안. 區隊別로 편성이다.
그래 姜貞淳후보생은 6구대 14번이다.
보급소로 가 官物을 타왔다. 예방주사. 기지 이발소에서 머리도 깎았다.
246兵棟 아래층은 1중대가 들어간다. 2중대는 2층. 양쪽 난간에 계단이 있다.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밤이 되자 다시 지급품이 나온다. 軍服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몸에 맞을 리가 없다.
" 옷에다 몸을 맞춰!"
키 작은 '바둑이 구대장'은 소리도 나긋하다.
메트레스를 깐다. 다시 담요. 그리고 國防色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 어서 자, 어서"
구대장이 지나간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또렷한 정신이 자꾸만 그 잠을 물리치려 들었다.

 

3월 13일
不寢番이란다. 새벽 5시 30분. 한 시간동안 動哨를 섰다. 儒城으로 가는 자동차불빛이 드믄 드믄 사라진다. 내무반 立哨와 다시 交代를 하였다. 잠꼬대 소리. 어느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할수 없는 작별을 나누고 있는가.
코를 가볍게 쥐어주자 코골이를 멈춘다. 다음 番立 후보생을 깨웠다. 그리고 인계인수. 간밤에 분배하고 남은 軍靴가 복도에 있다. 규격이 맞지 않아서 내놓은 열한 켤레의 군화. 불빛을 밝혀 개수를 세었다.
잠이 드는가 싶더니 起床이란다.
두 명이 한 組가 되어 寢具를 갠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구대장.
복도에 나와 정렬을 했다.
'일어서 앉자'를 몇 차례 했다.
一着으로 洗面場으로 갔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물은 차고 후보생은 끝이 없다. 그래 우리는 250명이다. 연병장으로 모였다.
이 곳이 점호행사장이다.
오전은 학과장수업. 과학관을 떠올리게 하는 건물이다. [軍人의 길]과 [將校의 信條] 교육.
나는 장교로써 道義心을 가지고 예절을 지키는 紳士가 되자.
이렇게 끝에 가서는  '紳士가 되자' 하는 식이다.
全文을 외워야 한단다. 야단났다.
낮이어도 볕은 차다. 손시러운 한 낮. 바람은 차다. Trey를 반납하고 나서 해바라기를 하고 섰다.
갑자기 Pushing이 날아왔다. 주머니의 손을 재빨리 뺐다.
" 왜.....추워?"
수염자국이 뚜렷한 8구대장의 푸싱은 3월 칼바람보다 매서웠다.
" 네 姜貞淳 후보생" 연이어 가슴을 파고든다
" 네 姜貞淳 후보생" 정신을 쏙 빼놓는다.
그리고 나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진다.
모든 게 새롭다. 경례하는 법. 식사를 하는 법. 모자 쥐는 법. 수건은 오른쪽 뒷주머니에 넣는다. 신발을 놓아두는 순서까지. 무슨 법. 무슨 법.....
후보생뱃지와 마크를 받았다.
내무반에 와 私物검열을 받았다.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은 모두 내놓았다.
비타민제 소화제 간장약, 이런 것들은 모두 걷어간다. 황규중후보생의 靑瓷담배 3갑도 예외가 없다.
" 뭔가?" 구대장이 내 앞에 놓인 물건을 살핀다.
" 노트입니다"
" 日記帳인가?"
" 네"
" 심심한데 잘 됐군"
그는 補助簿를 들고 갔다.

 

3월 14일
오늘은 각자 침구 정리다. 앞으로는 그렇게, 그것도 제 때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왜 같은 시간에 너만 늦냐"는 소리가 나올 판이다.
식사 대기중에 이곳저곳에서 Pushing이 대단하다. 눈알을 굴려서는 안 된다. 가슴은 활짝 펴고 손은 裁縫線 위에 밀착시켜야 한다. 일체의 위반도 안 된다.
아니 된다. 아니 된다. 그래 이제부터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피해가면 된다.
내일은 入校式. 그래서 종일 예행연습이다.
차려. 열중쉬어. 선서. 통일이 안 돼, 통일이.
이내 기합이다
" 머리를 땅에 박고 다리는 펴" 그래놓고 방향전환이다.
동서남북 세 번째까지는 방향이 잡혔으나 그 후로는 엉망이 되어 버린다.
앞 후보생의 엉덩이가 보여야 하는데 이 무슨 머리며 허리인가.
내무반에 들어 실 바늘을 가지고 朱記를 하였다. 帽子며 洋襪에 이르기까지 [614 姜貞淳]이다.
候補生은 피곤하다. 起床에서 就寢까지 역시 후보생은 고단하다. 침구정렬선이 맞지 않단다.
" 발 올려 "
머뭇거리고 있었더니 官物函에다 발을 올리라는 소리다. 거꾸로 서기 물구나무는 피를 역류시킨다. 다시 검열을 받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2내무반 취침. 10초 내로 잠자리에 들 것"
후닥닥 침구 속으로 파고들었다.

 

3월 15일
宣誓式이 있는 아침이 왔다. 冬約服을 입고 기지극장까지 뛰어갔다.
어제 왔던 곳이 이곳이다.
' 나는 국가를 지키며 국민의 권리와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며 적법하게 제정된 諸法令을 엄수하여 성실히 복무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손바닥을 내린다. 20분간의 부동자세.
學校長 최우식대령은 국가의 維新理念 구현에 최선을 다 해달란다.
그리고는 후보생간의 親睦과 戰友愛를 당부한다. 사회에서 생각하고 있는 그 以上의 將校像을 구현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뒤를 이은 대대장신고는 몇 차례 더 이어졌다. 그러더니 이런다.
첫째 성실 둘째 인내심, 이상.
피와 담과 눈물을 요구하는 구대장도 있었다. 사회의 썩은 동태 눈깔을 빛나게 만들어 주겠다는 7구대장의 말에는 가시가 세다. 그는 나중에 씨벵이가 된다.
우리는 제1연병장으로 이동을 하였다. 거기 建國機 앞에서 각자 기념사진 한 장씩. 이 사진이 家庭通信文속에 넣어져 간단다.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오리엔테이션으로 이어지는 시간. 正門쪽으로 가며 先任區隊長이 묻는다.
" 저기가 뭔가?"
" 정문입니다"
" 저 곳으로 나가고 싶은 후보생 있나? 10초 셀 때까지 나와.....아홉, 열.
없어? 그러면 앞으로 나오는 놈은 죽도록 패서 끝내겠어"
저마다 저 문을 나서지 않겠다는 決意만이 조용히 후보생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일석점호시간이 왔다. 오늘은 또 무슨 푸닥거리를 해야 하는가. 그런데 그 주인공이 내가 됐다.
" 너 고개! 고개!"
내무반장이 인원보고를 한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려 번호!
" 하나, 둘, 셋......"
첫번이 張天龍이다. 그 다음이 金鍾哲, 金容文 그리고 나, 다음이 황규중. 침상 건너로 崔秉泰 朴泳和 조세현 白世鎭 權景出. 이렇게 열 명이다.
내 번호에서 시원치 않았는가.
" 관물함에 다리 올려 "
L-19이다.
내무반원 모두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미안했다. 이제 혼자가 아니다.

 

3월 16일

半 리쯤 되는 驅步길. 돌아오는 길에 동터오는 아침을 맞았다. 싸락눈이 내린다. 바람도 함께. 12비행대대는 비행훈련을 시작한다.
오전은 制式훈련이다.
앞으로가, 좌로 돌아, 옆걸음으로 2步.
一絲紛亂하게 움직일 리 없다. 125명이다. 이번에는 토끼뜀이다.
大食堂으로 이동간에는 오리걸음으로 왔다. 행진간에 伍와 列이 맞지 않았대서다. 귀를 잡는다. 아그작 아그작.
역시 오리걸음은 효과가 있다. 4일 만에 변소로 갔다.
'자주국방의 의의'에 대한 정훈장교의 시간.
그를 통해 어제 駐越韓國軍司令部가 완전 철수하였다는 소리를 들었다.
첫 점호시간이 왔다. 비로소 올 것이 왔다. 이미 준비를 했다. 각오도 했다.
모든 구대장이 굶주린 사냥꾼이 된다. 눈에 심지도 돋았다. 그러니 무엇 하나 그냥 지나갈 리가 없다. 상은 차려져있고 숟갈질만 남았다.
" 야! 이게 턱 당기는 거야?"
선임구대장의 푸싱이 날아온다. 나는 지금 푸싱을 맞기 알맞은 위치에 서있다. 木寢牀의 높이는 30Cm. 그러니 손을 휘두르면 정확히 오른쪽 가슴에 와 닿는다. 턱을 제대로 당기면 침상 앞에 가지런한 軍靴와 短靴, 운동화 그리고 실내화를 볼 수 있다.
거울삼아 面刀를 해도 될 만큼 군화 코는 빛이 난다.
" 당겨 봐! 더. 더. 더 못 당겨? 야 임마! 왜 당길 수 있으면서 왜 안 해"
이래서 맞고 저래서 맞는다.
건너편은 조세현이다. 그는 너무 턱을 당겨 우스운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 너 왜 그리 인상이 나쁘냐?"
그러면서 한 대 때린다. 맞는 그도 웃어 버리고 때리는 구대장도 그 바람에 웃는다. 우리라고 참을 재간이 있는가.
" 왜 웃어?"
후보생은 復命復唱을 해야 한다. 그런데 웃노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다.
" 이 내무반에서는 우스워서 점호를 못하겠는데"
그러더니 열 명 모두에게 푸싱을 한 대씩 때리고 나간다.
다른 내무반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난다.
" 네! 李令杓 후보생!"
얻어터지는 소리만이 선명하다.
맞는 것은 참아낼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건 官物函에 물구나무서기다.  팔에 힘이 쏠린다. 뱃가죽이 당긴다. 땀이 쏟아지고 피가 역류한다. 콧물에 나중에는 오줌까지.
이렇게 첫 점호가 지나가는가 하였더니 이 무슨 잠자리에서 집합인가.
복도로 모였다.
" 첫 점호가 끝났다고 벌써 풀린 거야?"

 

3월 17일
아침구보를 마치는 데 명예심이 없다며 기합이다. 집합이 늦었다나?
주먹 쥐고 엎드려뻗쳐.
하나 둘씩 배가 쳐진다. 땅바닥에 닿으면 구대장의 발길에 채인다.
용을 쓴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다.
다음 주부터 생활을 함께 한다는 신임중대장이 그 뒤를 받았다.
" 몇 가지 부탁을 하겠다.
첫째는 후보생은 결코 淘汰되지 않는다. 교관들은 도태시킬 만큼 무능력하지 않다.
둘째는 모든 행동은 상식에 기초를 두고 하라.
셋째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臨할 것. 이상"
개인소개를 하는 내무교육시간. 胎生이 다르고 성장과정이 같지 않으며 학교 전공 취미가 제각각인 30명의 후보생이 한 자리에 모였다.
출신을 이야기한다. 두 자녀를 둔 후보생도 있다. 김성근, 그러면 너와는 同門이 되는구나. 중간쯤에서 내 차례가 왔다.
" 어째 좀 엄숙하지?"
구대장이 꼬집는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이다.

 

3월 18일
첫 일요일이다.  오늘은 목욕과 세탁을 할거란다. 하사관생활을 해본 후보생은 하루가 환하다. 그런데 이런 목욕은 처음이다. 125명이 20분 안에 목욕을 마쳐야한다. 그런 뒤 세탁장.
비누칠을 해 가며 양말과 수건을 빨아 널었다. 萬國旗처럼 펄럭인다. 이 바람에 잘 마르게 생겼다. 
가정통신문에다 주소를 적는 시간.
'조국의 번영과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維新課業에 온 겨레의 염원 과 노력 속에 다져가고 있는 이때…….' 이렇게 通信文은 시작한다.
'귀하의 자랑스러운 子弟 아무개 君은 오늘도 조국蒼空의 수호를 위하여 알차고 보람 있는 교육훈련에 邁進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大隊長으로써 국토방위의 훌륭한 干城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傾注하고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가정에서도 귀하의 子弟가 오직 맡겨진 課業에 盡念하고 바람직한 국가의 干城으로 되기 위한 교육훈련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激勵를 보내 주시고 교육훈련을 맡고 있는 저희에게도 指導鞭撻을 내려 주시기 바라옵니다. 끝으로 귀댁에 무궁한 행운이 같이 하시길 祈願하며 後面에 안내 말씀을 드립니다.
공군기술교육단 항공병학교 후보생대대 대대장 공군중령 이우식'
建國機 앞에서 찍은 사진도 함께 넣었다. 그리고 封緘을 했다.
後面의 안내사항도 함께.
1. 귀하의 子弟가 입교시 소지했던 물품과 피복은 3월 19일 기지 우체국을 통하여 각 가정에 우송하오니 못 받으신 분은 당 대대 중대장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2. 교육 기간 중 面會는 5월 5일부터 매주 토요일 13시부터 16시까지 기지 면회소에서 실시하며 첫 면회 週부터 매주 일요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출이 실시됩니다. 그 외 평일과 5월 4일 이전에까지는 一切의 面會 外出이 허용되지 않으니 이점 널리 諒知하시기 바랍니다.
3. 교육 기간 중 일체의 取食物, 煙草, 金錢, 藥品, 衣服類 등은 送付치 마시기 바라며 受領시에는 返送 조치합니다.
4. 교육 기간 중 休暇는 허용치 않고 있습니다. 단, 直系 尊卑屬 사망시 官報에 한하여 휴가를 보낼 수 있으나 歸隊時 所定의 서류(사망진단서)를 지참하여야 합니다.
5. 兵籍에 관한 문의와 요구서류(현역복무확인서)등은 다음 주소로 반송우표 同封하여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6. 교육 기간 중 귀하의 子弟를 담당할 訓育官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대장 공군대위 최 종식
       구대장 공군중위 이 철수
7. 교육 기간 중 귀하의 子弟 住所는 다음과 같습니다.
   730-68 공군기술교육단 항공병학교 후보생대대 사관중대 제6구대.
 
3월 19일
이제 두째 週로 접어든다. 起床과 동시에 外廓 구보다. 그런 뒤에 침구정리. 세수는 2분 내에 마쳐야 한다. 비누칠은 사치한 일이다. 거울은 복장을 점검하기 위한 도구가 됐다.
名譽心. 사관후보생은 高度의 명예심을 가진다.
그 명예심이 부족하다고 또 지적이다. 세 시간 동안 기지외곽을 돌았다.
그 나마 特食이 나와 다행이다. 사관후보생은 特食費가 따로 있어 그렇다. 소고기국에 김치. 꽁치는 온전히 튀겨서 두 마리씩. 머리에서 꼬리까지 남기는 법이 없다. 
훈련에서 기합. 하루가 길다. 그래서 허기가 진다.
점호행사는 기합의 전시장 같다. L-19은 그렇다 치고 침대간의 體刑은 또 무엇인가. 앞 침대와는 1m거리다. 침상에 엎드려 상대방의 팔을 껴안는다. 朴泳和가 내 상대다. 오래 견딜 수가 없다. 무게 중심이 어깨 쪽으로 쏠리면서 마침내 쏟아진다.
" 누구야? 쿵 하고 떨어진 놈이?"
다시 일어나 재빨리 자세를 취한다. 지금 구대장은 1내무반에 있다.

 

3월 20일
2시에 不寢番을 섰다. 5구대와 6구대가 책임구역이다. 외워두어야 할 근무 守則들.
'불침번은 화재도난의 예방, 위생에 주의, 제반 호흡에 주의하여 四周경계의 임무를 지닌다.'
60명의 후보생들. 낮에는 훈련장을 헤맸는데 밤에는 꿈속을 헤맬 것이다.
街路燈은 밝아서 보름으로 가는 달빛을 죽이고 들었다.
오전 두 시간은 구보다. 제1연병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여간한 체력소모가 아니다. 활주로를 가로지른 모래바람. 입안에 모래가 씹힌다. 꽃 새움인가. 그래서 누군가 이런 詩도 생겨났다.
 가슴을 문지르며 울고 싶은 너
 내 혼속에 깃든 처음 아가야
 네 고향 이른 봄의 열풍을
 너의 핏속에 불러줄 께
 가자
 早春의 태양을 삼키고
 사람도 神도 없는 우리의 동산으로      

 

3월 21일
" 불침번 너 몇 시 근무냐?"
" 세시"
" 변소 가도 되겠구나"
" 그런 차림으로?"
오토바이소리가 멀어진다. 兵棟에서 백미터쯤 거리. 어둠 속에서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소변은 닐리리칸이다. 턱에 올라서면 된다. 解憂所는 천정이 없다. 
이제는 자는 일이 報償처럼 여겨진다. 앞으로도 세 시간을 더 잘 수 있다는 것은 祝福이다.
오전에는 태권도와 제식훈련.
점심에는 豚肉찌개다.
우와!
음~
가득한 고기에 놀라고 나면 이번에는 비계껍질에 숭숭한 털이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망설일 필요는 없다. 후보생의 胃에는 面刀날이 달려있다.
잘 먹이고 나서인가.
특별훈련이다.
" 엎드려뻗쳐"
정신을 改造하겠단다.
" 기준! 右로 나란히"
" 기준! 정식간격 左로 나란히"
이렇게 50여 차례. 125명이 길게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기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匍腹이다. 연병장의 반절까지 기었다. 옷은 말할 것도 없다. 땀으로 얼굴도 흙빛이다. 우측무릎에 나 있는 腫氣가 스쳤다.
" 일어 나"
이번에는 거꾸로 접어 돌며 기었다.
" 三步로 벌려!" 그러더니 줄줄이 기란다.
다시 누운 채로 옆으로 구르기. 땅바닥에 뺨을 댄다. 봄기운이 느껴진다.
빙글빙글 구르고 났더니 吐할 지경이 됐다. 
그랬는데 통닭구이다. 누운 채 上體를 들고 다리를 들어 손을 앞으로 내미는 자세. 햇볕은 뙤약볕. 우리는 익을 대로 익었다.
연병장 위에 올릴 수 있는 메뉴는 다 오른 셈이다.

 

3월 22일
온 몸이 뻐근하다. 驅步는 日朝點呼로 대체되었다. 다음 週부터는 일조점호가 있겠단다.
오전 1,2교시는 행동간의 방향전환.
우리는 제2연병장에 앉자 [士官候補生의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3월 23일
讀圖法시간. 구대장은 우리를 학과장까지 인솔해 갔다.
" 戰術學시간이니까 정신들 똑바로 차려. 허튼 자세를 보이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고"
士兵 둘이 掛圖를 걸어놓고 나갔다. 2분 뒤쯤 漆板뒤에서 작업복바지가 나타났다. 中尉가 들어섰다.
" 차렷!"
경례를 하고 '必勝' 구호를 붙이려는 순간 배를 차는 소리가 났다.
올 것이 왔다.
가슴팍까지 軍靴 발이 올라왔다. 우리는 완전히 공포에 휩싸였다.
" 네가 근무자야?"
" 네"
" 네가 이 클래스의 代表者지?" 푸싱이 연달아 날아왔다.
제 3내무반의 남쪽창가에 자리를 튼 宋基植후보생에게는 세살 난 딸과 일 곱달 된 아들이 있다. 나이도 있어 대하기 쉽지 않았다. 광주비행장 근무 경력이 그를 報告者로 만든 것인데 저렇게 발길질을 당한다.
채이면 밀린다. 밀려서는 안 된다. 곧장 그 위치로 가서 서야 한다. 다시 채인다.
" 네, 宋基植 후보생"
이 번에는 張天龍 후보생이 불려 나간다. 대뜸 발길이다. 푸싱은 가슴에 정통으로 들어간다.
" 그게 부동자세냐?"
움직였던 모양이다.
" 너 어디 나왔어?"
" 영남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 나왔습니다"
침이 튀겼다.  敎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 너 누구 빽으로 들어왔어?"
" 아닙니다"
" 시험 안보고 누구 빽으로 들어온거야?"
張天龍후보생의 말은 새어나가는 식이다. 그는 당할 만큼 당했다. 그리고 더 당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燔祭로 인해 救援을 입었다.

 

3월 24일
제2연병장에 團 사열식에 참가했다. 손이 곱을 만큼 바람이 차다. 우리 옆에선 下候와 下豫후보생. 우리는 將校의 길로 가지만 그들은 下士官의 길로 간다. 이번에는 3구대장이 나서서 호통을 친다. 어디가 어떻게 잘 못되었다는 지적이 아니다. 그냥 엉망진창이란다. 그러면 그런 줄 알면 된다. 후보생은 이리 채이고 저리 밟히기 마련이다.
손시러운 토요일 오후. 두 번째의 세탁시간이다. 우리는 두 시를 넘겨서까지 세탁을 하였다. 그것이 빌미가 되었다. 저녁에 특별훈련이 있을 테니 집합신호가 떨어지면 舍庭에 집합하란다.
그렇게 모인 점호장. 추웠다. 추운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후보생은 지금 춥고 배고프다. 大田이 人心不順 貞操不順 氣候不順 이렇게 三不順地라더니 그래서 이렇게 추운가.
" 그게 不動 姿勢인가?" 그러면서  팔굽혀펴기.
" 추운가?" 空士에 입학해서 졸업은 美空士에서 한 선임구대장의 목소리는 칼이다.
" 안 춥습니다"
" 나머지는 뭔가 춥다는 건가?"
" 안 춥습니다"
" 모두 웃통 벗어"
예상치 않은 일이다. 우리는 땅바닥에 배를 대고 누웠다. 별들도 얼어붙어 버린 밤하늘. 구르고 기었다. 처음에는 얼얼하던 몸이 무뎌져서 추위를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 똑 바로 정신 차려. 알았어?" 그러면서 옷을 입으란다.
취침시간이 지났다. 우리는 일요일 아침 30분간 더 잠을 자도 되는 여유 를 앞당겨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때 구대장이 나타났다.
" 6區隊 자기 싫어? 싫지? 팬티만 입고 점호장에 집합!"
불운의 週末이다. 정렬. 선두 기준!  번호 하나 둘.....이상 집합 끝!
포복이다. 第一匍腹 앞으로! 이게 뭐냐. 오늘 새로 입은 속옷이다. 어떻게 덜 묻혀 볼 수 없을까. 운동장을 기어가면서 그 생각을 거두고 말았다. 

 

3월 25일
땅도 얼어붙었다. 구보로 화장실을 다녀올 때는 微明으로 몰랐는데 식당에 다녀와서 보니 水道에서 흐른 물이 얼어 있다.
목욕탕. 입장순서는 닭싸움으로 정한다. 1중대가 2중대를 포위하는 바람에 차지를 놓쳤다. 시간은 짧다. 어떻게 씻고 나와야 하는지를 일러주지 않아도 된다. 蕩속에 몸을 담그고 있을 여유는 없다. 59.2Kg. 2주전만 해도 61.5Kg이었다.
이제 편지를 써도 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런데 국제정세와 국내 문제에 論評을 해서는 안 된단다. 부대의 編制나 暗號도 기록해서는 안 된다.  장비이동이나 配置는 물론이고 날짜도 아니 된다. 그러면 무얼 쓰는가. 私的이야기만 써라. 가장 模範答案은 이렇다.
 '나는 잘 있다. 너도 잘 지내나. 그럼 서로 잘 지내자.'
첫 편지를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自治制度가 실시된다. 그 명단이 나왔다. 下士官출신의 部內者들이 1期 대대근무후보생이 된다.     

 

3월 26일
3주째 맞이하는 월요일. 근무자제도는 내일부터 시행이란다. 오늘은 그 예행연습이 있었다. 아침 세면과 청소시간 그리고 그 후의 신변정리시간이 짧게 주어졌다. 침구정돈.
결혼을 하게 되면 아내에게 침구 角세워 놓는 것부터 가르쳐야겠다.
조세현이 이 말을 받는다.
" 자식새끼들이랑 이렇게 점호대열로 서게 하고 턱 다녀!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데굴데굴 난다" 그래서 한바탕 웃었다.
食器당번으로 金鍾哲후보생이 나간다. 그는 여간 배고파하지 않는다. 두 트레이를 먹을 수 있는 식기당번을 일찌감치 자원하고 있던 참이어서 崔秉泰 대신 먼저 나가게 된 것.
첫 驅步를 했다. 발바닥에 비누칠을 하면서 부릅틀 발을 걱정했다. 땅거미가 시작될 때 시작한 구보는 밤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선배 期數들은 儒城을 다녀왔다는 데, 우리는 基地안만 세 바퀴 돌았다. 落伍者는 나오지 않았다. 저마다 67기의 名譽心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각오가 完走를 가능하게 한 것이리라. 목욕은 完走에 대한 보너스 같은 것. 옷을 갈아입었더니 몸도 마음도 가뿐해졌다.
 
3월 27일
오전은 [意思전달] 학과시간이다. 아주 가지런하게 정리정돈이 된 내무반을 둘러보는 기분이 든다. 말마다 깔끔하다. 타고난 것인가, 남다른 배움 때문인가.
傳達者는 간단하고 구체적인 사실을 말해줘야 한단다. 말은 완벽해야 한다. 용어는 객관적이어야 하며 文脈은 整然해야 한다. 그리고 論理에 합당해야 한다. 그럼 受話者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注意를 집중하여 열심히 傾聽하여야 한다.
그러면서 이런다. 餘裕를 가져라. 훈련간에 설령 기합을 받더라도 여유를 가져라. 그 길만이 후보생이 살길이다.

 

3월 28일
銃器引受를 하였다. 받고 보니 銃身에 13Cm정도 금이 가 있다. 제2의 생명에 금이 가 있으니 이 노릇을 어쩐다? 나중에 반납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구대근무자는 문제가 될 거라고 한다. 구대장은 만져보더니 괜찮단다.
" 내가 책임질 테니 가져가"
오후 3시. 특별강연회에 참석하였다. 鷺山 李殷相의 [충무공 정신].
강연요지를 적어냈다.
한 민족의 역사방향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그 역사 방향을 잘못 잡아 실패한 역사를 남긴 일이 있다. 앞으로는 역사행진의 방향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는 새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과 조국의 位相을 올바르게 정립해야할 시기에 있다. 우리민족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어느 깃발을 따라가야 하는가. 방향도 없고 깃발도 없는 민족은  희망이 없다.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은 어딘가. 이걸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다.  
修養錄을 쓰고 났더니 小便이 급하다. 그냥 갈 수는 없다. 明分이 있어야 한다. 휴지통을 집어 들었다. 金鍾哲이 따라 나선다. 
" 야! 姜貞淳 내가 급하다. 내가 먼저 가자"
" 내가 갔다 온 후 네가 다시 이 휴지통을 들고 가라"

3월 29일
비 갠 아침. 겨울이 가는가. 야외점호도 춥지 않다. 활동하기 좋은 날씨다. 바쁘기론 저녁만 할까. 화재비상교육에 두 번의 실제연습. 警備組가 나온다. 鎭火組도 한 군데. 看護組도 빠질 수 없다. 나는 破壞班에 배치되었다. 화재구역까지는 비를 들고 나갔다. 맨몸으로 나온 후보생도 있다. 문서취급반에서는 편지봉투를 들고 나와 웃음거리가 됐다. 당직사관이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 진짜 불이라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비로 쓸 셈인가?"
오늘 점호, 침구 정돈상태가 나쁘단다.
" 寢具 들고 서"
지난번 3내무반이 받았던 기합이다. 이것은 카시미어 이불이 아니다.
우리는 40분간 벌을 섰다. 얼굴에 이불이 와 닿는다. 기웃해진 고개. 용을 쓰고 있는 우리를 향해 3내무반에서 한마디 한다.
" 어때, 할만하지?"
갑자기 어깨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3월 30일
다섯 시나 되었는가. 변소에 다녀와 잠이 드는가 싶었더니 비상벨이 울린다.
5분후 起床. 그리고 執銃驅步란다. 冬內衣와 머플러는 벗고 집합. 발바닥에 비누칠 할 겨를도 없다. 동녘은 검다.
선임 구대장이 나선다.
" 오늘 아침 구보의 목적은 협동심 昻揚, 인내심 倍加, 질서의 維持에 있다. 한 사람의 落伍者도 없도록 "
구보는 한 시간 십분간 이어졌다. 그제서야 기상나팔이 울린다. 어둠도 가시기 시작한다. 3管區司令部쪽 늪지대에는 억새꽃에 서리가 하얗다. 땀이 난다. 團本部 앞으로 지나는 데 한 후보생이 소리를 지른다.
" 진달래다"
도로변에 꽃망울이 피어났다. 지금은 눈에 담아 두는 것도 무겁다. 옷이 달라붙는다. 이제 두 바퀴째. 거친 숨은 길가의 서리를 녹이고도 남는다.
落伍者는 나오지 않았다. 보상은 없다. 구보로 빼앗긴 시간만큼을 우리는 보충해야 했다. 15분 내에 洗面 침구정돈과 청소를 마쳐야 한다. 후닥닥 넘겨야 하는 콩나물국에 된장찌개 아침식사. [솔 베이지의 노래]를 들으면서 저마다 다른 생각의 抛物線을 그렸다.
담배는 어찌할 수 없는가. 담배 때문에 특별훈련을 받았다. 누군가 변소에서 담배를 피우다 發覺된 것.
" 2중대 전달, 전원 점호장에 집합!"
우리는 손洗禮를 가슴으로 받아냈다. 어찌나 매운지 속까지 얼얼했다. 일순 숨이 막혔다. 화려한 원산폭격은 그 다음 차례다.

 

3월 31일
3월이 다하는 마지막 주말. 대청소다. 중대본부 앞 화단에 나가 클로버를 뽑아냈다. 특별내무교육도 끝났겠다, 마음이 한결 가볍다.
自敍傳 제출이 있는 날. 갑자기 표정들이 엄숙해져 버렸다.
지급된 건빵을 씹으며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역시 적어 남길 일은 4년간의 學部時節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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