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泉역에서 시내까지 가는 20km 도로는 곧다.
이곳의 가로수는 甘肃省에서도 유명하다.
거리는 밝고 사람들은 기품이 넘쳐난다.
酒泉역에서 출발한 미니버스의 종점 4거리에서
기본료 3元하는 밴형 택시를 4元에 타고
동쪽으로 이동 泉湖公園에 이른다.
입장료 30元
友谊宾馆 구내식당 菜12元, 蕩은 6元이다.
酒泉에서 天水로 가는 기차는 1068次 普快
13:21분 출발하면 다음 날 06:50에 天水 도착한다
17시간 30분가는 无座普快, 빈자리에 앉으면 된다.
酒泉Jiuquan은 실크로드 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오아시스 도시로
도시는 새로 치장을 하여 깨끗하고
오아시스 도시에 가로수를 저리 가꿔 감숙성 제일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데
시내 한 가운데 高樓고루를 지나 동쪽으로 나아가면
酒泉에 이른다
입구를 들어서면 보도에 새긴 상서로운 저 문양들
전각안에
한무제가 내린 술 한 병을 이 샘에 풀어 병사들과 나누어 마신 기록은
조각상에 이리 담기고
가까이 가서 보면
당시 병사들의 모습이 선연하다
NOTE:
곽거병(기원전 140년 - 기원전 117년)은 위청의 누이인 위소아의 아들이다.
위청의 또 다른 누이이자, 곽거병의 숙모인 위자부가
무제의 총애를 받아 려태자를 낳아 황후에 올랐기 때문에,
친족이자 총명한 곽거병도 무제의 총애를 받았다.
한나라 개국 공신인 진평의 고손자 진장은 곽거병의 어머니와 밀통해 의붓아버지가 되었다.
말에서도 활을 잘 쏘아 18세에 위청에 따라 흉노 정벌을 나섰다.
그 후 몇 번이나 흉노 정벌에서 공적을 올려, 기원 전 121년에 표기장군에 임명되고,
기원전 119년에는 흉노의 본거지를 격파해, 위청과 함께 대사마로 임명되었다.
큰 공로와 무제의 총애, 그리고 젊은 나이의 권세를 가졌던 곽거병이었지만,
기원 전 117년 불과 24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곽거병과 위청은 동시대에 활약했으며, 혈연이기도 하여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위청은 소년기에 노예로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겸손하게 대하였고,
항상 아랫 사람을 챙겼다. 반면 곽거병이 철이들었을 때에 이미 일족은 외척이었으며,
숙부가 흉노 정벌에 큰 공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숙부와는 대조적으로 오만하고, 병사가 굶고 있을 때에
자신은 호화로운 막사에서 연회를 열었다.
그러나 의외로 궁정의 병사 사이에서도 곽거병 쪽이 더 인기있는 인물이었다.
위청은 겸손이 도를 지나쳤고 아부를 떨었다.
그러나 곽거병의 오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이것이 그를 믿음직한 용장으로 여기게 했다.
한 무제도 성격이 적극적이고 과감한 곽거병을 더 기꺼이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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