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ange
스페인에서도 더러 볼수 있는 터미널 이 가게
이번에는 유심을 끼웠다.
5기가에 50Dh
유심칩 30Dh.
바로 세상이 열렸다.
페스행열차 1등칸
지금은 Google구글만 가지고 세상 여행이 가능하다
Blog와 가이드 북은 도처에 널려있다.
그런데도 어렵게 여기는 배낭여행인데
이도 저도 없었던 시절에는 어떻게 여행이 가능했을까
오로지 발과 낙타, 배로 파리와 북경을 여섯 번 오고간 거리만큼을 해낸
중세시대 여행가 이븐 바투타Ibn Battuta를 떠올렸다.
오늘날 국경 기준으로 거쳐간 44개국, 그것도 27년간이나 말이다.
그가 이곳 탕헤르 사람이다
여정을 시작한 것은 1325년, 21세 때.
메카 순례를 위해 떠난 청년은 마흔 여덟에야 고향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섰을 때 하녀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는
BBC 방송이 기억난다.
고향에 돌아온 바투타가 남긴 여행기는
가 본 곳의 풍토와 관습, 상품 매매와 교환 방식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최고의 작품이자 귀중한 사료로 손꼽힌다.
그래서 옥중 구술을 받아 적었다는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고,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고,
왕국의 수도가 된 적이 있기도 한 Fes에 들어섰다.
Fes 메디나‘ 로 불리는 이 말은 골목이라는 뜻이다.
13세기에 만들어진 Fes Jdid
1925년 프랑스 식민통치시절 세워진 Ville Nouvelle까지
모두 3개의 지역이 오늘 날의 Fes다.
그런 설명은 뒷전으로 흘려도 좋다
칭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표현한 말, 모로코의 정신적 고향
혹은 천년을 간직한 미로도시‘라는 말도
와서 본 사람들이 만들어낸 극찬이다
이 숙소를 다녀간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후기를 남겼다.
하나같이 주인의 친절을 적어 놓았다.
넉넉한 아침식사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친절하다라는 말에 공감하지 않은 직원이 하나 있다.
모직천을 어깨에 두르고선 투숙객과 메디나 투어를 60유로에
흥정하고 있는 이 사람은
우리가 객실을 배정받기도 전에 메디나로 가는 투어 상품을
내 놓았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돈도 들고 시간도 내어 왔다.
쉽게 올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우리를 호구로 보는 구나
그런데 루프탑에서 민트 티를 대접받고
우린 TV채널 선정이 어렵네
그랬더니 말 수는 적었으나 자세는 유연했다.
아, 이 사람 때문에 직원이 친절하다라고 하는 구나
8시 30분부터 아침 식사를 준비해 놓습니다.
동트는 시각에 루프탑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앞서거니 뒤 이어 와서 차지한 끼리끼리 앉은 테이블에
그가 우리 테이블에 제일 먼저 차려 내놓았다.
빵에 삶은 달걀 두 개. 부침개 한 장. 요플레 두 개
버터, 꿀, 복숭아 쨈, 치즈
그리고 오렌지 쥬스를 내 놓고 선
커피와 티까지.
그래서 이 숙소의 아침식사를 칭찬했었구나.
이제 골목길을 찾아 Old Market과 가죽염색작업장을
갈 차례.
손가락을 모아 밥 먹는 시늉을 해 보이고선
엄지를 세워보였더니
허리를 굽혀 감사함을 표해 주었다.
9,600개의 좁은 그물망 골목으로 이루어진 Fes의 구시가지는
그렇기 때문에 관광 상품화가 되어
사람들을 끓어 모으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개별 여행자들로서는 끊임없이 다가오는 호객꾼들과
모로코 수준에 맞지 않는 바가지요금으로
열 받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인 형제들 사이에서 유명한
zouaia의 무덤이 안치된 사이디 아메드 티자니
허리를 숙여야만 출입이 가능한 이 문은
겸손함의 상징이 아니라
나귀가 드나들 수 없도록 고안된 것이라 한다.
오다가 비껴 서서 바라본 우리나라 단체여행객이
그 사이에 두 팀.
도끼‘라는 뜻을 지닌 도시 페스로 가기위해
마라카시에서 아침 7시 출발하여
10시 카사블랑카 도착하면 하산 메스키타 사원과
모하마드 5세광장을 본 후
페스에 도착하여 가죽 염색공장까지를 둘러본 후
저녁식사를 마치면
밤 9시 55분에 페스공항을 출발하여
두 시간 뒤 00:15 바르셀로나공항에 도착했다니
189만원의 그 여정이 놀랍다
아내가 마녀할멈이라는 손팔찌 장식을 고치고 가겠다고
들어선 곳에선 우리 들으라 하는 소린지
한국 사람이 돈을 너무 써
그러는 중년남자의 경상도 목소리를 들어야 할 정도로
한국여행객들로 성시를 이루는 골목이다
코리아라고 하면 노스냐 사우스냐를 묻는 이들.
일본 여행객은 보았으나 그룹은 보이지 않았다.
해외여행에 열심인 중국인 단체.
그들에게 인사를 보낸다.
그래주면 같은 동포로 알고 내 한 마디에 스무 마디가 건너온다.
이런 상품이 그저 나왔겠는가
두드리고
단금질을 하여 만들어 낸 것을
이런 빛깔
이런 가방 하나에 이르기 까지 그 뿌리를 찾아가면
반드시 이르게 되는 곳
우리도 가죽염색작업장에 섰다.
민트를 꼭 받아서 챙겨라
비둘기똥을 매개로 악취가 어쩌구 저쩌구 하였던데
지나친 호들갑으로 보인다.
우리도 이 위치에서 사진을 남겼다.
위성안테나 접시
859년 개교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라 알려져 있는
Qaraouiyine Mosque 혹은 Kairaouine'카이라우인 모스크를 지나쳐
골목을 빠져 나오면
이 골목들이
그들 생업의 터전이고
그래서 외지인들의 구경거리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화재라도 나는 날이면 구제할 방도가 없어 보여서
은근히 겁이 났다.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여유 만만한 표정들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겁니다
그러는 것 같았다.
Old Market으로 들어가는 열 몇 개의 문중에서
그 중 하나를 나오다
주머니에서 흘린 5Dh 돈 이야기를 해야겠다
웨하스를 꺼낼 생각으로 자크를 열었다.
흘린 나도 모르고 뒤 따라 오던 아내도 모른 채,
그렇게 오고 있는데
뒤에서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
돌아보니 베르베르족 여인이 내가 흘린 돈을 쥐고 있었다.
이런 것이 여행자에게는 힘이 된다.
.
1월 14일(화) 19:20 모로코 매크니스
서울시각 1월 15일(수) 03:20
NOTE:
그리 쉽지 않은 것이
끊기고 다시 잇고
그러기를 몇 차례 하는 사이에
붙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노, 노!
그러자 그 말이 다시 돌아왔다.
필요 없대, 잘 가라지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그 말을 돌려쓰고 있었다.
삐끼를 써본 사람들의 의견은 두 가지.
편했다
따라가기 바빴다.
나도 그랬다. 구글맵을 보며 가는데 집중하느라
풍경을 사진에 담을 여력이 없었다.
4,5층 건물사이 골목길이어서 한 번 끊기면
잡히지않아 하늘이 드러나는 곳으로 왔다 가야했다.
페스기차역으로 들어왔다.
빨간색 택시들이 묻고 길을 막아선 채여서
이곳이 70년대 우리의 풍경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택시뿐만이 아니라 다른 차들도
차도를 건너는 사람을 무시한 채 달려서
아주 조심스러웠다.
건너가시라
서로
먼저 가기를 권접하던 스페인의 거리위로
지금의 구례읍내를 떠 올려 봤다.
우리도 지금의 페스와 다를 바 없지 않는가.
빵! 소리를 내며
비껴, 그러면서 차가 먼저란 인식이 깔린 구례다.
13시 40분에 떠나는 Meknes행 124열차
35분간, 한 구간 탑승이어서 1등석이 무색했다.
27Dh이면 2,70유로 아닌가.
Gare Fes.
천년 왕조를 받쳤다는 페스를 떠나며
이 도시가 베지색도시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철로변에 널부러진 비닐봉지들
가 봤던
나라 어느 도시들을 연상하게 만드는 데
그래 Fes역 앞에서도 비슷한 향신료 냄새가 났다.
탕헤르를 출발해 Fes로 가는 열차가 Meknes를
지났다.
그러니까 다시 되돌아가는 것인데
너른 벌판도 풀들로 해서 더욱 파랗게 보이고
줄지어 심어 놓은 올리브나무도 빠르게 지나갔다.
전정을 끝낸 복숭아 나무.
이븐 바투타가 말 한대로
‘온갖 과일들이 풍성하고,
흐르는 물과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 절대 바닥나지 않을 것이라는 면에서
모로코는 최고의 나라‘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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