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

[앵커브리핑]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강정순 2019. 4. 29. 20:52

 

 

 

지난 해 설날

어느 성묘객의 촛불로 번진 산불은 천은사방향으로

타고 들어가 한바탕 소동이 났었네.

藏洞저수지가 얼어붙어 강물을 퍼다 날라야했다던

춥던 겨울이 가고

벌목을 해낸 그 자리에 만 이천주의 편백나무를

보름 이상 심어 냈네

 

 

 

 

 

구례 것을 축내고

멀리 화순에서까지 싣고 오는데

일 톤 용달차를 운전해온 사람이 한다는 말,

오늘 (아침) 7시까지 광의면사무소 앞에다

대란 디 나서기도 바쁘지다.

첫새벽에 누가 실어 준다요

어제 (오후) 3시에 이걸 실어다 집에 놓고 아침에 나왔지다

그렇게 와서 받아야할 운반비가 15만원.

초로를 지난 지 이미 오래, 팔순을 이웃한 이 사람에게

산림조합에서 간이세금계산서를 요구했는데

얼마 떼 주고 끊으려면 끊을 수는 있지다. ”

그러면서 이틀이나 걸리다시피해서 15만원 받는 일인데

이렇게 돈받기가 힘들다고.

그나마 경기도 안 좋아서 일거리도 없다는 데

 

 

 

내 나이

무슨 일 인들 마다하겠는가

 

 

 

도랑을 치우는 일도 우리 일이 됐네.

의 농어촌공사와 水保人이 짜고 인건비를

부풀린 것이 발단이 되어

水保人들의 몫이었던 이 일이 산림조합일이 된 것은

올해로 삼년 째.

 

          

이름을 대면 자네가 알만한

하사마을 하사제용수로

우리 마을 뒤쪽 사도양수장용수로

마산리 골프연습장 아래 청전제용수로

정쟁 뜰로 불리는 전장용수지선

藏弓저수지 아래 대지제용수간선

강남가든 건너편 천은3호용수간선

산동면 원달리 수평제도수로

수평제 인근 상원제용수로

문척면 금정리 금평보용수간선

간전면 간문리 간문간선

간전면 삼산리 중평간선

간전면 금산리 효곡간선

간전면 흥대리 안음1지선

간전면 양천리 양천지선

간전면 효곡리 효곡보지선

그림이 그려질 것이네

지금 내가 가는 곳, 그 곳의 일자리가 눈에 선할 것이야.

안 가본 곳 없이 골골이 다녀보는데

 

 

 

고사리도 한줌씩 꺾어 말리고

그러면서 穀雨가 지나갔네

 

 

 

이 좁은 고을에 군민의 날이라고 걸린 플래카드들이

걸려도 너무 걸리고

지천에 널려있어서 눈이 시릴 지경이야

축협조합장 당선 플랜카드도 아직까지 걸려있고

재경지역까지를 아우르는 동창회도 4월에 모아 열리는 것은

꽃 철이어서일것이야

                      

우리 구례 벚꽃이 좀 좋은가

3월 하순 눈을 트기 시작한 벚꽃은 청명 한식 때까지도

절정을 이루고 있어서

비바람 한 번 몰아치면 우수수 흩날리고 말던

예년에 비해

이번 벚꽃은 사진에 그치지 않고

그림이 되고 시가 되고 사랑을 이루기 충분했네

 

그런데 일이란 것이

좋은 그릇에 좋은 일들만 담겨지는 것이 아니어서

모친의 죽음에도 당도할 수 없는 자식이 되었으니

하늘과 땅 사이

天倫이고 人倫之大事를 함께하지 못한 일

오로지 스스로를 자책하고

일신을 채근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하지 말게나

잠시의 이별도 은혜로 받아들이고

삭히시게, 痛恨

자네가 울지 않았어도

온 종일 비가 울음처럼 내려주었고

서러워 말거라, 흔들어 주었을 모친의 손길

빗속에 안개 가득한 토금리를 거쳐

이제는 넝쿨에 가려진

두 분 이름의 문패를 찾아 갔더니

숨이 고른 아들이 문을 열어주고 있었네

내 놓아도 자네보다 나을

아들이 그 일 해냈으니 그럼 된 것이야

손주 손에 토금리에 들었으니 축복받은 분 아니신가

 

 

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네

내가 가장 신뢰하는 JTBC 저녁 8시뉴스에 나온

[앵커브리핑]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사족처럼 전하면서.

 

뉴스 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노회찬.
한 사람에 대해, 그것도 그의 사후에
세 번의 앵커브리핑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은 이보다 며칠 전에
그의 죽음에 대한 누군가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을 때 했어야 했으나
당시는 선거전이 한창이었고,
저의 앵커브리핑이 선거전에 연루되는 것을
피해야 했으므로 선거가 끝난
오늘에야 내놓게 되었음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가 학교에서 몇 푼거리 안 되는 지식을
팔고 있던 시절에 저는 그를 두 어 번
저의 수업 시간에 초대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저도 요령을 부리느라 그를 불러
저의 하루 치 수업 준비에 들어가는 노동을
줄여보겠다는 심산도 없지 않았지요.
저의 얕은 생각을 몰랐을 리 없었겠지만,
그는 그 바쁜 와중에도 아주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다음 해, 또 그다음 해까지
그는 저의 강의실을 찾아주었지요.
그때마다 제가 그를 학생들에게 소개할 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노 의원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이다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제가 그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정치인 노회찬은 노동운동가 노회찬과 같은 사람이었고,
또한 정치인 노회찬은 휴머니스트로서의,
자연인 노회찬과도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등진 직후에 전해드렸던 앵커브리핑에서
저는 그와의 몇 가지 인연을 말씀드렸습니다.
가령 그의 첫 텔레비전 토론과
마지막 인터뷰의 진행자가 저였다는 것 등등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인연이라기보다는
그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을 터이고
그런 몇 가지의 일화들을 엮어내는 것만으로
그가 가졌던 현실정치의 고민마저
다 알아채고 있었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놀라운 죽음 직후에
제가 알고 있던 노회찬이란 사람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를 한동안 고심했고,
그 답을 희미하게 찾아내 가다가
결국은 또 다른 세파에 떠밀려
그만 잊어버리고 있던 차에
논란이 된 그 발언은 나왔습니다.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서야"
거리낌 없이 던져놓은 그 말은 파문에 파문을 낳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에 그 덕분에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노회찬에 대한 규정,
혹은 재인식을 생각해냈던 것입니다.
 
, 노회찬은
'돈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돈 받은 사실이 끝내 부끄러워 목숨마저 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비리를 지닌
사람들의 행태를 떠올린다면
우리는 세상을 등진 그의 행위를 미화할 수는 없지만
그가 가졌던 부끄러움은 존중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그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버린
그 차디찬 일갈을 듣고 난 뒤
마침내 도달하게 된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의 동갑내기 노회찬에게
이제야 비로소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NOTE: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의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 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