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이 비가 내린다. 바람도 불지 않아 이 비는 얌전히 내린 것인 데, 겨울 비 답지 않게 포근한 하루를 안고 왔다. 가을걸이에 메주 쑤고 김장까지 마쳤으니 그러지 않아도 한가로운 시골이다. 노인들이야 노인당으로 가서 점심에 화투 그리고 하나도 쓰일 데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하루를 보내겠지만 장정들은 오늘 하루 푹 쉬며 보내기 좋은 날씨가 됐다. 시골생활 그 진수는 게으름에 있다. 나야말로 어디 나갈 일도 없고 뉴질랜드로 여행을 나선 아내의 자리도 비어있겠다 느지막이 아침을 열어도 좋을 일이다. 그런데 문지방 앞에서 나 나오기를 기다리는 다섯 마리 고양이가족이 있다. 이 비속에 부뚜막만한 잠자리도 없는 일이지, 새끼 고양이들은 부뚜막의 온기를 안고 자고 나서는 방안 불 켜지기만을 기다린다. 생선 말아 제 그릇에 담아 나올 줄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부터가 내 하루 시작이다. 바쁠 일은 없다. 어제같이 등짐져 나무를 하겠는가, 아내가 없으니 바깥나들이를 하겠는가. 더구나 오늘 이 비로 5일장도 연 듯 말듯 할 일이다. 그러니 [흰비]와 [은비]가 먹다 말고 와선 긁어 달라 하기로 마다할 일이 아니다. 사랑이 그리운 것이지, 제 옆구리를 맡기고 쓰다듬어 주기를 기다리는 내 새끼들. 한가로운 아침이다. 아내가 없는 한 주일을 나의 천국으로 만들자. 이부자리 반쯤 아랫목으로 개놓고 KBS 1FM을 듣는다. 이런 날은 나지막한 소리가 낫다. 라디오는 사람을 붙들어 매지 않아서 좋다. 어디서부터 치워야 나의 천국이 화려해질까. 아내가 제일 오래 머무는 곳에 어둔 그림자가 있다. 그래, 가스레인지를 닦아주자. 버너 주변 국물 넘친 자국은 불려 닦지 않으면 안 된다. 물에 담가놓고 두 버너짜리 레인지 옮겨 철수세미로 가볍게 바닥을 닦아가며 아내의 흔적들을 지워냈다. 아내가 곁 있을 때 이랬다면 서로 불편했을 일이다. 아내는 자기 고유한 영역을 침범했다는 그 사실로 토라질 것이고 나는 깔끔하지 못한 성격을 탓했을 것이다. 없을 때, 냉장고도 치워볼까. 70% 정도 공간관리를 하면 좋으련만 가득한 우리 집 냉장고는 식음료창고다. 습성은 고치기 어려운 일. 나이 들어 잔소리는 쥐약과도 같은 것. 그러므로 시골로 와 같이 사는 4년 동안 냉장고는 치워주지도 열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인 데 이것까지 치운 줄 알면 고맙기보단 쫌생이영감이라고 여기겠지? 그러니 두자. 냉장고 위 먼지. 이곳은 걸레질로 되지가 않는다. 기름 쩐 먼지는 세제가 아니면 안 된다. 형광등은 또 어떤가……. 먼지도 햇빛을 보면 빛이 난다고 했다. 내 손이 천국으로 가는 바로 그 열쇠다. 장으로 가는 길. 비는 그치는 듯 보슬비여서 자전거로 오고가기 괜찮았다. 이 비에도 사람들은 장터를 이루어냈지만 상인들이 더 많은 장날이 됐다. 차마 생선머리 담아 가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은 이런 풍경으로 해서인 것. 그래도 선선히 머리토막을 내어주는 상인들이 있어 고마운지고.... 다음 장까지 우리 집 고양이 살찌게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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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 eddy 2011.01.05 22:08
오랫만에 들러보았네~ 잘 지내시고 있구먼 ㅎㅎ...
아내가 빈자리, 그게 나는 매우 불편하던데 자네는 천국을 만드시는군,
새해 복 많이 받어~~! 허 이거 참 eddy라고 뜨니 알랑가 모르겠네,모르시면 한 번 눌러 보겠지 뭐.
아내가 빈자리, 그게 나는 매우 불편하던데 자네는 천국을 만드시는군,
새해 복 많이 받어~~! 허 이거 참 eddy라고 뜨니 알랑가 모르겠네,모르시면 한 번 눌러 보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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