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3주간의 이번 내몽고여행,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세종호텔에는 이틀 전에 입국한 王서방 가족이 있다. 그곳에서의 가족행사를 마치고 기차를 탔다. 개멀미는 단지 기우일 뿐, 영등포에서 오는 동안 똘이는 잘 견뎌주었다. 나가 있는 여행 중 늘 이놈이 눈에 걸렸다. 일 년이면 한 두 차례씩 이래야 된다는 것, 배낭만 꾸리면 표정이 어둡게 읽힌다. 이제 됐다. 우리는 구례로 돌어왔다.
고맙게도 모든 것이 제 자리에 놓여 있었다. 무화과나무에 송송이 열매들도 그대로 인 채, 바람에 날아 들어온 댓잎 감잎들만 어수선 했다. 개울물은 말라 버렸다. 작은 웅덩이에 고동이 한 움큼, 피라미들이 가득했다. 마른 도랑위로 은행잎들이 떨어지며 낮고 그윽한 구릉을 이루어 냈다. 지하수도꼭지를 열고 창밖으로 고무호스를 내 보냈다. 그렇게 해서 도랑에 물을 채웠다. 본디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을 집수해서 쓰던 것, 그러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니 무엇이 이상하랴. 마음이 넉넉했다.
나를 기다리는 것들, 뒷골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연년생 매실나무가 있다. 옮겨심은 배추도 살아 반절, 그곳에 있다. 우리가 없는 그 동안에도 비가 없었음인가, 마늘은 반절쯤 움이 터 나오고 쪽파는 힘이 겹다. 주인이 비운 것을 이것들이 먼저 알고 있음이다.일주일쯤 물주는 일에 매달렸다. 한 광주리 토란도 캐 담았다. 이 씨알들은 온전히 다시 심어 넓은 잎을 피우고 실한 알맹이를 만들 것이다. 내려 오는 길에는 땔나무도 한 짐. 그렇게 해서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설픈 내 손도 소용이 되는가. 감 따는 데 와 주었으면 좋겠단다. 피아골로 갔다. 여기저기 산비탈에 멋대로 자란 감나무들, 그것도 때가 넘었다. 상처喪妻를 하고서야 돌아온 그에게 손에 잡 힐 리 없다. 송이밭에서 단 하나도 쥐어 보지 못했다니 가을 가뭄으로 덕도 못 본 친구에게 이래 주었다. -품종을 단일하게 해 봐. 밤나무를 살리든 감나무를 살리든... 그는 능선에다 손을 그으며 이런다 -저 나무들을 칠거라. 그러면 여기서 저기까지가 고사리밭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되기까지 3년이란다.
반야盤野란 이름 그대로 너른 벌판이다. 소반같은 곳. 거기에 반야재가 있다. 재齋는 재계할 재. 상고대의 선영을 모신 곳인데 음력 10월 15일에 시제를 지낸다. 본관을 진주로 한 우리는 구례에서 150년정도, 그 전에 광양 망덕에서 100여년 그 전에는 하동 옥종과 전대. 이렇게 거슬러 올라 가다 누인 곳이 이곳 진성이다. 그러니까 500년전의 삶터인데 누운 자리는 넓고 따뜻했다. 하루 전에 모여서 총회를 하는 자리. 이제는 앞서거니 뒤따라 음택으로 가야할 어른들이 앉아 시사를 논한다. 서른 명 조금 넘게, 해마다 이렇게 줄어 간다. 마당길가 가마솥에서 고기가 삶아지고...부림해서 쓴 할머니들의 일손도 바쁜 것을, 이 중 가장 나이 젊은 내가 아닌가. 도마에 칼을 잡고 수육 접시 얹고 술상 차려 방으로 들였다. 어른들은 부하로 부터 대접만 받았을 사람이 이런다' 며, 기특해 하더니 윗대할아버지 초헌관에 나를 세웠다. 20년쯤 뒤에는 나도 저 자리에 앉아 분방을 하고 아헌관과 종헌관을 지정해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양택에서 음택陰宅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번 11월 산행은 영광 불갑산으로 갑니다. 해서 나선 길. 6대의 버스가 순천으로 가는 고개를 넘었다. 간 밤 서해안에 내린 눈은 여수 오동도에서 시간을 메우도록 해 주었다. 산이 아니고 바다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을 가지고 바다를 메워 지른 다리를 건넜다. 마을의 宋氏는 총기도 좋아서 전에 다녀간 모월 모일 까지를 훤하게 꿰고, 나는 그 때가 국민학교 수학여행때였지, 그리고 공군대학 교육중에 다시 한번 그 때는 아내도 함께였던 길이었음을 떠 올리며 동백나무 사잇길을 따라 절벽으로 내려 갔다. 그 곳에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손수건위에 보온병을 놓고 앉은 젊은 모녀가 있었다. -녹차를 드릴까요, 커피도 있습니다만 따슨 커피를 한 잔 받아 들었다. 바닷볕이 더 강렬해서인가 눈이 부셨다. 그 커피를 마시는 동안 젊은 딸을 데리고 나선 이의 녹차사랑이 이어졌다. -저희도 애 아빠가 공직에서 나온지 3년 된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도 손수 담가 먹고 살 정도로 이곳 생활에 푹 빠져 지내네요. 이 녹차는 순천분이 수제차로 만든 것인데, 몸에 좋다는 산야초도 함께 넣어서 이렇게 포장을 해 놓은 걸 사온 거랍니다. 만드는 법을 알고 싶었는 데 사서 먹으라며 비법은 안 가르쳐 주네요... 그러면서 이 모녀는 산동으로 가는 버스로 올라갔다.
시절은 이제 겨울로 가는데 때늦은 비가 왔다. 마당가 그릇에 제법이다 싶게 고이더니 이틀후에는 골목을 쓸고 흘러갔다. 그리고 다시 비바람. 이렇게 세차례 내린 비로 개울이 불어나고 땅이 촉촉해졌다. 마늘도 새순이 올라왔다. 자연보다 위대한 스승도 없다. 김장을 했다며 가져온 우리 지산아짐. - 금매 말이시, 한달 전에만 왔드라믄 얼마나 좋겠는가 일마다 순서가 있다. 때가 있다. 놓치면 실기失期. 그러나 사랑하는 데 늦은 때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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