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

새마을운동과 Che체 게바라

강정순 2011. 3. 20. 13:01

마을문고가 들어왔다.


새마을문고 전라남도지부에서 보낸 것.

 

300권속에 체 게바라 평전이 있다.

 

먼저 읽고 싶었다.


왜 하필 체 게바라인가.

 

세상을 살다보면 실록에 인물전이 다가오는 때가 있다.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가 감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나이와도 관계가 있는가.

 

... 나는 픽션보다는


논픽션을 더 가까이하는 휴머니스트다.

 

책을 펼쳤으나 제대로 읽어 나갈 수가 없었다.

 

새로 뚫린 고속도로위에서 끊임없는 진동하는 휴대전화.

 

- 여기 보건소예요. 오늘 일제 방제활동을 하여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 오환수씨가 수로 관리인 추천서에 이장님 도장을 받아야 하신다네요

 

- 상사마을 민방위교육 통지서가 나왔습니다.

 

- 둘레길 에코 빌리지 사무국에서 한 번 나갈거네요.

 

그런가.

 

마을 일을 접고 가는 것 같았으나 실은 안고 가는 것.

 

벗어날 수 없다면 비끼고 싶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렇다.

 

난 지금 연수원으로 간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사이며


고고학자, 작가, 언론인, 사진가, 시인, 체스선수,

 

거기에 운동까지 열심히 했던 사람이 있다.

 

나중에는 국립은행의 총재, 장관,


리고 대사직까지 수행한 다면적인 인물로

 

원래 이름이 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라는데

 

이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반동적 폭력에는 혁명의 힘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며


손에 총을 쥐고게릴라로 활약하다가


1년여 전부터 뒤쫓던 볼리비아에게 생포되어

 

조그마한 학교에서 서른아홉 나이로 사살되기 까지


그가 사회주의 혁명가라는 것,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의 게릴라 지도자로 활동했다는 것,

 

그러니 실로 가슴 떨리는 일생 아닌가.

 

비견해 보건대 長征을 넘어서는 마오쩌둥과도 같이,


칼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인


레닌과 같은 열정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열정이 없이 지도자가 가능하겠는가.

 

체 게바라가 쿠바에서 안주하지 않고


볼리비아로 투쟁무대를 옮겨 활약하던 60년대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100$ 미만이었다.

 

국가 예산도 없어 미국의 원조물자를 팔아


대충자금을 재원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그렇게 해서 나라 살림을 꾸려 나갔다.

 

혁명은 나라구제를 해내지 못하여서


로부터 10년 가까이, 그러다가


내가 교양학부를 다니던 69년에 가서야 비로소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형성된다.

 

청도군의 신도 마을이 단초가 된 것.


수해복구지역을 시찰하던 중 그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 지도자를 중심으로


마을길도 잘 정비되고 조림도 잘 된 것을 보고

 

착상한 것이


새마을 운동 구상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2년 전 일이다.




 

 

의사로서 에르네스토 게바라 박사가


 의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의 삶속으로 뛰어 들었을까.

 

아바나는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Che를 끌어당긴 모양이다.

 

레닌의 글 몇 장과 아주 교묘히 뒤섞여버린


그 풍경 속으로 말이다.

 

557월 매섭도록 추운 그날 밤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처음으로 만난다.

 

장소는 戰線이 아니라


멕시코의 안토니오라는 여인의 비좁은 아파트였다.

 

190쎈티가 족히 되는 껑충한 키에 윤


기 있는 검은 머리와 콧수염을 기른


강인한 인상의 카스트로를 본 순간


스물일곱 살의 체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전한다.

 

긴 이야기가 필요 없이


두 사람은 제국주의의 억압으로부터


라틴 아메리카 민중을 해방시켜야 하는 절대적 필요성에


뜻을 같이 하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로부터 그는 ‘ Che로 불리게 될 판이었다.



 

 

새마을 운동에서 보면


가난으로부터 해방은 총이나 칼이 아니다.

 

농촌 지도자들이 농촌개발을 위해


평생을 바칠 수 있도록 정신교육이 필요하다, 는 것이

 

당시 朴統의 구상이었다.

 

독농가로부터 교육이 시작되었다.

 

영농기술 농협운동 새마을가꾸기 사업교양과


새마을 운동정신 분임토의로 이어지는

 

2주간의 교육을 통해


태도변화와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한 것이

 

교육의 목표였다.

 

성과가 나타났다.

 

외형적으로는 산간벽지에 전기불이 들어오고


안으로는 하면 된다.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조금씩 가지게 되었다.

 

에 새마을운동이 태동하기 전부터


에는 집단적 증산운동


千里馬운동이 있었는데,


對抗馬


새마을운동이 태동한 것이라는 지적은 그 후의 일이다.

 


 


 

쿠바 동부 산악 지역에서 게바라는


매번 정상까지 오르는 무모한 등반으로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오곤 하였다.

 

게다가 체력단련 연습에, 병원근무,


정치관련 컬럼과 대륙발견 이전 시대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 등에 매진하다보니


하루 다섯 시간 자기도 어려웠다.

 

한 때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은 자기만의 대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세상을 해체할 수밖에 없으리란 신념,


아내와의 시간도 자연스레 줄어갔다.

 

자신만의 생활은 점점 자취를 감추어갔다.

 

그의 인생은 점점 혁명에 바쳐지고 있었다.

 

가자

 

새벽을 여는 뜨거운 가슴의 선지자들이여

 

감춰지고 버려진 오솔길을 따라

 

그대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인민을 해방시키자

 

(같이 체스를 두기도 하였던 바요장군에 대한 서사시 중에서)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던가.

 

새마을 운동을 통해 가난은 해방되었으나


점점 정권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정권 유지용이었다는 것,


그 이후 세칭 새마을 비리사건들이 터져 나오면서

 

이 운동은 국민들로부터 멀어지고 잠시 잊혀졌다.

 

그러다가 국민운동으로 재점화를 시키고자 하는 분들이


오늘 이 교육을 만들었다.

 

북한이 99년부터


2의 천리마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432.

 

양평 홍천 보은 제천 증평 당진 아산 안동 합천 의령 경주 영암 곡성 구례…….

 

전문가를 모셔와 특강을 마련해주고


매번 깔끔하고 정성을 들여 만든 식사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

 

부족함이 없는 데 추웠다.

 

동트는 아침 연병장에 모여 다 같이 애국가를 부른다.


실로 얼마만인가.

 

어느 전사가 이런 글을 남겼다.

 

조국의 광복을 못보고 나는 죽는다.

 

동지여 해방된 조국에 나를 묻어다오

 

 



 

그런데 딸을 위해 ‘Che는 이런 글을 남긴다.

 

나는 내게 혁명의 불길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


마야와 과테말라를 지나

 

아메리카라는 길을 함께 걸어왔네.

 

그곳에서 나는 안내자가 되어줄 길동무를 만났네.

 

우리는 양키들로부터


이 작은 나라를 지키자는 생각으로 함께 살았네.

 

이제 내가 싸움에 나서야 할 순간.

 

그것은 또 하나의 작은 나라,


리 아메리카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그곳에서 착취와 빈곤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이라네.

 

그것은 장차 내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도록 하고 싶은


아버지의 의지이기도 하지




 

 

남녀가 함께 하는 분임반.


호기심이 다름이 아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남자들의 심리가 호기심이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 같이


러면서 나에 대해서는


한껏 호기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기술자다.


아쉽다. 일찍이 그런 기술을 익히지 않았음이

 

- 자기소개는 이렇게 해 보세요

 

  종이위에 손을 대고 그림을 그린 후


  엄지에는 지역/ 하는 일/ 이름을 적고…….

 

그러면서 자신의 특징이나 성격 혹은 별명을


그리고 행복했던 일이나 슬픈 기억


그리고 새끼손가락에는


좌우명이나 소망을 적어가며 이야기를 해보란다.

 

- 자식들이 잘됐으면 좋겠네요.

 

결국은 자식사랑이다.

 

그 중 유독 내가 말이 달라서


내 소개를 끝냈더니 지도교수가 이런다.

 

- 방금 여러분이 들었던 이런 말을 적어두면 좋겠네요.

 

  내 인생 여행처럼

 

  내 사랑 영화처럼   

 

내가 살아가며 꿈꾸는 세계, 여행 이야기는


따로 시간을 가졌다.

 

일흔 두 시간의 기차를 타고가


카스에서 파키스탄 국경과 인도국경을 차례로 넘어가는 

 

배낭여행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인피에르노 강변에 설치한 임시 야영지에서


게바라 일행을 맞이한 카스트로는

 

소대의 공식적인 지휘관에게 찬사를 던졌다.

 

- 축하하네. 자네 대단한 일을 해냈군!

 

그러나 대위는 게바라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 제가 아닙니다. 대단했던 사람은…….

 




 

 

강사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우리가락 탈춤이야기로 장내를 압도하던 김효정씨.

 

그 분들이 있어 23일간의 합숙이 고단하지 않다.

 

그리고 같은 길을 가는 지도자들의 애환과 고충이 同病相憐이 됐다.

 

- 이번 교육이 저를 다시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런가.

 

우리 마을에 새마을회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라를 위해 마을을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도 있을 것이다.

 

이제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줄


런 사람들을 모아


마을의 사령탑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새마을지도자에게 명예는 없다.


돈으로 보상되는 일도 아니다.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순수한 열정만이


그 이름을 명예롭게 해줄 것이다.

 



 

 

아무리 험한 불길이 우리의 여정을 가로막아도

 

단지 우리에겐

 

아메리카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진


게릴라들의 뼈를 감싸줄

 

쿠바인의 눈물로 지은 수의 한 벌 뿐

 

(같이 체스를 두기도 하였던 바요장군에 대한 서사시 말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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