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댁이 우리 집을 찾아 왔다.
마을 부녀회 총무도 함께
무슨 일인가
의미가 남다를 것으로 여기며 맞아 들였더니,
바깥분 생일이 이달이라며 1주기를 맞아
마을분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고싶은 데 의향은 어떤가
그리 물어 오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유족의 뜻을 받들기로 하였다.
마을 분들이 나서서 安葬을 한 것이 지난 해 4월 1일.
그 날 [구례에서]속에 이런 글을 하나 올렸었다.
금산댁 가는 길은 험했다. 구불구불 돌담을 따라 그 곳으로 올라가면 대밭가 겨울바람이 찼다. 담쟁이덩굴에 휘감겨 누운 검은 바위들과 지네 그런 곳으로 누군가 入宅을 했다. - 외국에서 공사판 기술자 질 흐다가 떨어져 고생을 많이 했다제 - 그래서 요양흔다고 구례로 와서 좀 살았다마 - 어찌 아들을 못뒀쓰까 - 그래서 방에서 강아지 두 마리를 기름시롬 일남이 , 이남이라 흔갑제 그는 한동안 마을사람들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마을로 들어와 터를 잡고 나뭇간을 채우기 6년 쯤, 서울댁이라는 택호도 얻었다 세 집 건너, 그러나 말은 트지 않았다. 쉽게 정을 주지 않는 나의 성미가 이야기를 막았다.
구판장은 우리 마을 아크로폴리스다. 사람들은 이곳으로 와 술을 통해 세상을 읽는다. 매일 구판장에 내려와 술을 마시고 올라가는 그의 손에는 막걸리병이 쥐어지고 참 팔자 좋은 양반이다 그런 정도의 기분으로 지나쳤다. 그런데 보름간 곡기를 끊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술이 들어찼으니 어찌 숨을 쉬겠는가.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다기에 가 보았다. 상주가 없는 가여운 빈소....... 그리고 오늘, 한 평 넓이의 공동묘지가 그의 전부가 됐다. 가서 보니 [성도 김희윤]의 묘비에 뭍은 진흙이 촉촉히 내리는 봄비에 씻겨지고 있었다.
|
|
경노당에는 요즘 이래저래 먹을 자리가 많았다며
돈으로 나눠주기를 희망하였다.
보내온 분의 뜻이 훼손되지만 않는다면
그것도 괝찮은 것이라 여겨서
서울댁이 보내온 돈 40만원을 봉투 네개로 만들었다.
평소 나누기를 좋아하셨던 고인의 유지와
홀로 남은 서울댁의 마음을 함께 이 봉투에 담았는 데
마을 분을 대신하여 유족분께 감사를 드린다
'일상 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을 개발위원회 개최 (0) | 2011.01.24 |
---|---|
달빛마을'을 다녀왔습니다 (0) | 2011.01.24 |
마을회관 나무하기 (0) | 2011.01.15 |
마을업무 주민설명회 (0) | 2011.01.15 |
우리 마을 사무장 업무에 대한 지도방문 (0) | 2011.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