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세상을 떠나갔다.
누구는 召天이라고 하고, 別世라고 한다지만
죽음은 어떤 단어로 꾸민다해도 슬픈 이별이다.
술도 조금씩, 담배는 아예 입에도 안댄 사람이
폐암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작년에만 해도
좋아진다는 소리가 들리고, 해서 문병도 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보면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렇다
이태 전 서울에서 내려온 오국석 이희온 이렇게 셋이서
질매재를 거쳐 왕시루봉으로 산행을 한적이 있다.
내려오는 林道길가에 다래나무가 하나,
어쩌면 그리도 주렁주렁 달려 있던지
해는 저만큼 다리가 풀린다 싶을 정도로 고단한 산행끝에
마을에 다가서는데 그는 승용차를 대기 시켜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 한일당에 연해 있는 오리집에 자리를 마련해 놓고
맥주에 소주를 원도 없이 내 놓았는 데
그의 술과 밥을 먹어보지 않은 친구는 30회 동창이 아니다 할 정도로
사람 챙기기를 좋아했던 친구다.
정승집 개가 죽어야 문상객이 끄는 판인데
정승이 죽어가고 없으니 온이는 다 못오고
반절쯤 참여한 동창들이라고 한다. 세상은 그런 법이다.
야박한 세상사를 탓할 일이 아니다.
강형순 박병두가 부의를 대신해달라는 연락은 이미 받고 왔다.
6시 30분쯤 구례 친구들이 모여 문상을 하기로 하여
그 즈음 왕형수하고 들어섰더니
서울에서 이형길30회회장 오국석 마산면향우회장 남기윤
이희온 한상길 조현철이 먼저와있고
광주서도 신준모 윤남노 장기열 강기주가
순천에서 최근호
여기 구례에 사는 장재화 이희천 양성문 이재호
최칠모 오점례 차점순 오영자가
앞서거니 뒤이어 빈소를 찾아 주어서
그나마 먼저가는 저승길이 외롭지 않았다
살아, 이루어진 자리였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마는,
죽은 자가 이루어 낸 산 자의 자리에서 우리는 다짐을 한다.
30년쯤 먼저 가불해 가버린 목숨, 우리가 이어받아
건강하게, 더 건강하게 건강하게 살다가
딸 하나 여우고서 아직 장가 못보내고 남은 두 아들은 우리들의 몫이니
반절쯤 참여한 이 자리,
두 아들 혼사에는 30회 온이 참석해 주어
눈 못감고간 창덕이 눈 감겨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봄볕같이 따뜻한 오늘, 어려 뛰놀던 장궁뒤에 그가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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