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에서 시모노세키 항까지, 關釜페리가 오는 데는 반나절이 걸리지 않는다. 좋아진 세상이다. 예전 조선통신사들이 이곳까지 오는데 삼사일이 걸렸다고 한다. 규모는 300명에서 500명 이상. 파도가 깊은 곳. 죽음을 예견하여 유서까지 써놓고 떠나왔다 한다. 범선에 실려 왔으니 그 고초는 짐작이 간다. 이들은 모두 12번 일본에 오게 되는데 열한 번째에 가서야 본토상륙을 허가 받는다. 일본 측의 대우 또한 남달라서 시중꾼만 400명. 그런 일행이 에도까지 갔으니 장관이었을 것이다. 이 때 조선통신사들의 숙소로 제공한 곳이 아까마신궁이다. 주민들에게는 특별한 지시가 내려졌다. 훈도시 차림으로 다니지 말라는 것 비웃음으로 비췰 수 있으니 통신사를 향해 웃지말라는 것. 손가락질을 하지 말라는 것 등이 그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