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기행

[중국문화기행] 2001 티베트 라싸 포탈라궁

강정순 2006. 4. 14. 12:49

라싸까지는 1,166Km.

아침 10시와 오후 2시에 버스가 떠난다.

이번에도 침대칸에 들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기른 수염과 그을린 얼굴을 바탕 삼아

내국인표를 샀다.

제대로라면 納赤台(92Km) 不凍泉(91Km)

五道梁(89Km) 타타 (149Km) 雁石坪(92Km)

不明地(50Km) 唐古祉山頂·省界(50Km)를 지나

543Km 너머의 拉薩Lhasa에 가게 될 것이다.

도로개수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하니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오후 1시 반에 버스가 출발한다.

짐들이 지붕 위에 실린다.

번잡한 시끄러움.

시내를 벗어나며 注油를 하더니

한 시간 후 검문소에서 지체를 한다.

정원 초과란다.

그 바람에 검문이 수월해진다.

라싸로 가는 길은 靑藏公路.

오후 4시에 차는 靑藏公路 一工區에 들어선다.

라싸로 가기 위해서는 세 번의 검문을 거쳐야 한다.

4시 반, 일차 검문소에 와 닿는다.

나는 창가로 몸을 돌려

오후 햇볕을 온몸으로 받았다.

지도상 南山口일 것 같다.

곤륜산의 눈을 바라보며 그 검문을 피했다.

 

여행허가서가 없는 외국인은

고단할 수 밖에 없다.

2차선도로라지만 패이고 떨어져 나간 낡은 길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인적은 물론

하늘을 나는 날짐승도 없는

망망한 천지가 벌어지고 있을 뿐"이라는

玄奬法師傳의 표현 그대로다.

산과 산을 파고 들 듯 이어지는 길은

더욱 고산지대로 들어간다.

西藏加油站이 나타난다.

이런 주유소가 몇 개 더 있다.

기름은 얼마나 역한 지 머리가 다 아프다.

 

6시에는 納赤台兵站을 지나간다.

드물게 보는 5층 병영이다.

이것에 연하여 몇 채의 민가가 이어진다.

지금까지 불과 80Km의 거리를 달려오는 데 4시간.

그러면 앞으로 더 얼마를 가야 라싸인가.

비로소 이 길이 旅行이 아니라 苦行이요 만행임을 알겠다.

저녁 7시에 잠시 황량한 벌판에서 차가 섰다.

가게가 하나,

여기에서 간단히 저녁거리를 해결한다.

남자들은 앞산을 쳐다보며 바람결에 오줌을 눈다.

여자들은 좀 외진 곳,

가마니를 두른 곳으로 가서

저마다 엉덩이를 내보이며 일을 본다.

바람이 거세어 그만 갈아 끼운 생리대가

연처럼 날아올랐다.

어찌나 투박하던지 아이의 기저귀인줄 알았다.

이 집의 개는

 

컹컹컹 짖고 있어서 개로 보이지,

눈까지 검은 털로 가려 있어

마치 야크Yak처럼 보인다.

산은 지는 해를 받아서 환하다 싶었더니

구름이 가린다.

崑崙山에서는 구름도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쉬어야 저 산을 넘는다.

평원이나 다름없는 이 고갯길은 해발 4,725m.

그러니 나라고 재주가 있겠는가.

몸은 무기력하고 헛구역질만 거듭한다.

이제 어둠이 깔렸다.

'唐古拉Tanglha 山口까지는 한밤중에 넘게 된다.

이 곳의 산들은 各拉丹冬 GelaDandong6,621m

唐古拉山5,205m.

이런 고산지대 사이로 찻길이 열려

옆으로 오르락내리락은 거듭하며 길은 으로 이어진다.

불과 1세기 전만 해도 야크나 말 아니면

맨발로 넘어야 할 길이 아닌가.

새벽에 5,231m省界를 넘었다.

야밤이어서 검문도 없이

西藏에 이른 것이다.

산들은 한결같다.

눈으로 치장을 한 산들은 조금씩 자리를 비껴준다.

5천 미터 高峰을 몇 개 지나자 내리막길이다.

 

 

11시가 되자 4,545m那曲Naqu라는 도시다.

 

여기서 길은 사통팔달로 이어진다.

拉薩Lhasa까지는 직선 거리로 240Km.

우회할 거리는 6Km.

여전히 산과 산 사이의 협곡과 분지를 지나간다.

양떼들, 야크, 흰 색칠을 한 토담집들이 자주 나타난다.

경계를 이룬 흙담장은 철조망으로,

유목민의 빠오는 담집으로 변해있다.

산은 나무 하나 없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검다.

야크Yak도 검고 유목민도 검다.

개울이 흘러내리는 곳, 어디쯤인가.

솟대 같은 탈쵸Tharchog에 룽다Lungda가 나부낀다.

찻길 왼쪽은 부도인 스투파 Stupa,

오른쪽은 사원이다.

바위산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집수를 위한 건물이 우뚝하다.

양들은 떼 지어 다닌다.

많게는 수십 마리씩,

이들은 머무는 법이 없다.

다음에 오는 양들을 위한 이런 배려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이제 도 다하고 이 그쳤다.

과음뒤끝 숙취와 같다.

아무것도 입에 댈 수가 없다.

차에서 내려설 수도 없다.

그나마 소변은 비닐봉지에 담아 창밖으로 날렸다.

예비신혼부부도 연신 쥐어짜고 있다.

그런데 西藏人들은 담배를 피워대고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며 여유 있다.

우회하는 길은 비포장도로다.

간단없이 흔들리는 차.

이것은 여행이 아니다.

子正을 넘겨서야 버스는 시내로 들어왔다.

35시간에 걸쳐 해발 3,650m의 라싸에 들어섰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昌盛賓館으로 갔다


 

 

 

 


拉薩Lhasa라는 말은 부처의 땅이다.

정토를 찾아오는 길은 멀다.

중국에서 가장 西南部에 위치한 채

세계 어느 곳보다 문명의 손길이 적게 닿아 있는 곳.

이곳을 찾아오는 길이 고행 같더니

그래도 아침이 되자 몸이 먼저 일어났다.

나는 검게 보일 정도로 파란 하늘을 보고자

옥상으로 올라갔다.

布達拉宮Potala Palace이 지척이다.

사진에 담아 놓고 좌우를 보니

잿빛 산에 걸친 구름뿐.

그래도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구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이 든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

그리고 만년설.

비로소 여기가 히말라야의 북단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마침내 布達拉宮을 들어섰다.

돌바닥을 밟으며 오르는 숨 가쁜 길

천지사방에서 온 순례자들도

여기에 이르러 숨고르기를 제대로 못한 채

벅찬 감동에 젖어 걸음을 재촉하며

쉬어가기를 마다하였을 것이다.

동쪽 문으로 들어가 서쪽 문으로 나오게 되어 있는 데,

개방된 20여 곳을 지나가는데 만

몇 시간은 족히 걸린다.

1,000개가 넘는 방이다.

홀과 복도에는 금빛 부처상과 보살상

 

그리고 성인과 악마상등

티베트의 萬神殿像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가득하다.

달라이 라마가 묻힌 무덤은

화려한 예술품으로 다가왔다.

최고의 경지답게 무덤도 놓이면

예술이 된다는 靈塔殿도 지나쳤다.

지나치는데 만 1시간,

지극한 불심이 불상이 되고 佛畵가 되었으며

경전을 이루었다.

얼굴은 강렬한 자외선에 노출되어 검게 탄 藏族들이

형형색색 빛깔도 고운 색채들을 저리 이뤄 놓았다.

심성고운 족속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이 하늘을 닮아서 다만 손끝으로 그려냈을 뿐,

이것은 사람이 그려낸 그림들이 아니다.

좁은 회랑에는 티베트인들이

기름을 향로에 덜어가며 기도를 한다.

가난한 순례자들은

작은 돈을 바쳐가며 기도를 하느라

갈 길을 더디 하고,

여행객들은 경탄스러움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평생 여기 한 번 와 보기를 소원했던 순례자들이다.

현재 티베트는 라싸와 日喀則Xigaze를 제외하고는

단순한 交通路로 보면 된다.

짧은 기간, 티베트인들의 생활은

라싸를 보는 것으로 족하다.

 

점차 외부 여행객들의 증가는

타 지역에 대해서도

도시화를 가속화시킬 것이 자명하다.


 

 

 

 

 

라싸는 걸어서 돌아보기 충분한 곳이다.

우리는 浪熱路를 따라 끝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拉薩市師範學校를 지나간다.

解放北路로 접어든 것이다.

중형버스에 미니버스 그리고 택시에 인력거.

사람이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모든 수단들이

다 거리에 나와 있다.

사람 사는 참모습은 시장거리에 있는 법.

浪熱路7호에 있는 시장은

Yak고기와 야채들의 집산지다.

BroccoliCelery도 여기서는 헐하다.

배추 무 감자 토란 연근이 모두 다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깨끗이 씻고 다듬어진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市場은 그 끝이 포탈라궁 자락에 연해 있다.

이 궁을 끼고

담벼락을 따라 800m圓周Tsuglagkhang를 도는

순례자를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은 龍王潭공원으로 불리는

해방공원의 연못가에 앉자 유람선을 바라보다,

우리를 쳐다보다 그러고 있다.

룽다Lungda는 빛에 바래고 세월에 슬어

경전을 살펴 읽을 수가 없을 정도다.

 

저녁나절 八角路를 나섰다.

라싸에서 볼거리는 布達拉宮

大昭寺Dazhao Si를 친다.

Jokhang 사원으로 불린 이곳은

八角路로 걸어서 가기 좋은 곳이다.

라싸에서 가장 붐비는 곳.

거리 양편으로는 장사꾼들이 손수레위에다

, 융단, 공예품과 골동품을 내놓고 서 있다.

장사꾼들은 여행객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금방 알아차린다.

수많은 불상 중

조각해 놓은 象牙지팡이에 눈길이 미치자

휴대전화에다 150$이라는 숫자를 눌러 내미는

기민함을 보였다.

 

 

티베트가 통일을 이룬 것은

7세기경 Gampo왕에 의해서다.

그는 티베트 전역을 통일한 뒤

라싸를 도읍으로 정했다.

이 때 태종이 수양딸인 文宣公主 Wen Cheng

황금부처상과 함께 티베트로 보냈다.

티베트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이를 계기로 해서이다.

그에게는 네팔에서 온 부인이 또 하나 있었다.

小昭寺Ramoche에는 Bhrikuti公主가 가져온

불상이 안치돼 있다.

大昭寺Jokhang大殿 중앙에는

文宣公主가 가져온 불상jowo이 모셔져 있다.

순례자들이 엎드려 절하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힘겹다.

성소를 향해 절하고 있는 순례자들은

남루하고 초라한 차림인데도

표정은 부러움이 없어 보인다.

길 위로 五體投地하는 라마승과

마니통Manicha을 돌리면서

옴마니팟매홈 呪文을 외우는 순례자가 있다.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일생을 주리며 걸어서

이곳에 온 것이다.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승려들.

빈한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니

섬김을 받기도 힘들 일이다.

苦行僧이랄 차림의 스님이 와선 돈을 청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여느 살림집 같다.

줄줄이 향로위에 양기름불을 밝히는 사람들.

한가로이 종지[種子]를 닦고 있는 부녀자들.

이들이 입고 먹고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놋그릇을 닦던 우리들의 할머니를 보는 것 같다.

 

새 아침, 布達拉宮은 평은하다.

먼지구름이 한번 지나가고 난 자리.

봉황이 솟아오르는 날갯짓 같다.

높이 솟은 언덕(이들은 마뿌리산이라 부른다)에 지어졌으니

어디서나 볼 수 있다.

布達拉Sanskrit 梵語聖地를 의미한다.

350년 전에

동서 400m 남북350m로 개축되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됐다.

主樓13층 건물과 맞먹는다.

인근에 나무 한그루 없는 곳에서

어떻게 아름드리 기둥을 구해와 이런 건물을 지었을까.

 

겉으로 드러난 붉은 색은 紅宮.

여기서는 종교업무로 사용하고

白宮은 생활공간이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궁은

Dalai Lama의 집무실과 침실 등

일부만 개방되어 있다.

 

 

중심지에는 이미 백화점이 들어섰다.

구두만을 전문으로 파는 곳은

우리나라와 같은 값으로 나와 있다.

침대며 응접세트가게는 성업 중이다.

우리가 묵은 昌盛賓館

문구와 체육용품 백화점을 겸하고 있었다.

수입용품인가 했다.

그럴 정도로 일등상품만 진열돼 있었다.

새로 문을 연 정수기 가게.

설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어 흘러가는 데 정수기라니,

가스레인지는 또 어떤가.

미지의 세계, 오지로의 여행을 꿈꾸는 ,

한시라도 빨리 다녀갈 일이다.

이들은 지금 도로를 확장하고

낡은 집을 헐어내며

대규모 개축작업을 벌리고 있는 중이다.

여행객을 상대로 하는 여행사와 호텔

그리고 은행 이외에는 그저 장사 수준 이다.

이들은 낮 동안 집에 있을 것 같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시장이나 거리에서

무엇인가를 팔고 있다.

아니면 손이라도 벌리고 있다.

마니MANI통을 돌리던 순례자는

그늘 밑에 앉자 있던 노인에게 건네주는

반쪽의 호떡을 자기가 먼저 챙겼다.

앞치마라 할 수 있는 팡덴은 인도에서 건너왔다며

120에 내놓고 있었다.

티베트인들은 이것을 30에 산다.

젊은이들은 고유의 전통문화와 가족을 뒤로하고

외지로 나가고 있다.

자치를 위협하는 관공서는 늘어나고

자동차도 이제 인력거를 밀어내고 있다.

서민일지라도 실내는 간단한 가구와

나무 침대가 놓여 있고

따로 佛壇을 모셔놓고 산다.

아침에는 버터차와 빵을 먹고

저녁에는 모모라는 만두나 전통국수인 툭바를 먹는다.

그러나 지금은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게끔

값싼 음식들이 아침을 기다린다.

사람들은 훌훌 마시듯 일어나선

주머니에서 종이돈을 꺼내 아무렇게나 건네준다.

이들은 지갑에 돈을 넣고 다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