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도시기행]2003 로마 - 콜로시움
팔라티누스 양치기들의 정착지였던 로마는
이제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다.
교황은 로마 중심의 독립국가 바티칸에 살고 있다.
독립국가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남대문 시장 정도 크기다.
걸어서 도착한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
잔디밭 정원가 청동 솔방울 아래에서
오랫동안 사전 교육이다.
볕이 곱다. 이 거대한 청동 솔방울은
고대 로마의 분수의 일부라고 한다.
4세기에 걸쳐 이뤄낸 박물관은 세계 최대답다.
프레스코화의 진수가 미술관에 가득하다.
이집트유물은 따로 전시가 되어있다.
한쪽이 트인 주랑柱廊은 또 어떤가.
복도마다 그리스 조각품이 넘쳐난다.
작아서 편안한 정원의 연못 가운데
토란이 자라고 있다.
희랍시대에 만들어진 아폴로를 복제해 놓은
로마시대 대리석상도 여기에 있다.
2천년 세월을 넘어선 장인匠人의 손길은
아직도 따습다
미켈란젤로, 그래 5백 년 전 그가 그린 [천지창조]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에 있다.
제단 벽에 그린 [최후의 심판]은
사람들이 앉거나 서성이며 전시실을 떠나지 않아
더운 열기로 가득하다.
용서를 빌고 화해를 간구하며
평온을 열망하는 손길들이 여기저기 모아진다.
이 그림은 신의 분노에 직면한 죽은자의 영혼과
지옥에 떨어진 자를 묘사 하였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여기에다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자화상을 담아 놓는다.
聖베드로 대성당 St.Peter's에 들면
경건 그 이상의 경외심을 갖기 마련이다.
우선 그 웅장함에 기가 꺾인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은 100m가 넘으며
성당의 길이만도 2백m에 가깝다.
백년에 이르는 건축을 통해
그 시대 종교 건축 문학 예술의 정수가
이 건물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눈의 착시일 뿐, 어림없는 소리다.
성베드로의 무덤위에 서 있는 천개天蓋까지 가는 데는
한참이 걸린다.
대리석 바닥은 염색이 아니다. 천연돌을 자르고 붙여서
그들은 첨탑도 모자이크하고
성자도 그려낸다
베드로 무덤 위에 세워진 대 성당,
그 중에서도 청동으로 만들어진 베드로의 발은
수많은 순례자들의 손길에 검게 닳아있다.
오만과 독선 그리고
저 잘났다 기고 만장해 사는 사람도
필라레테문을 나서기 전에
자기가 얼마나 미미한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
정문을 나서니
산 피에트로 광장에 쏟아지는 석양빛이 눈부시다
버스는 카피톨리네 언덕아래에서 멈춰 선다.
폐허가 된 신전들과 어지럽게 널려있는
유적지를 답사하기 위해서다.
일러 로만 포럼.
초기 공화정시기 포럼은 元老院뿐 아니라
가판 상점과
매음굴로 무질서한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폐허로 변해버린 유적지 위로
해가 지고 로마에 어둠이 찾아든다.
밤이 되어 찾아간 곳은
트레비Trevi분수와 스페인 계단.
이곳에 이르는 좁은 도로망은
로마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로마관광의 중심지다.
이곳은 원래 로마의 욕장에 물을 대기위한
수로의 종착지라고 한다.
여기에다 젊은이들은 동전을 던져
그들 사랑을 다짐하고,
여행객들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는 희망을
담아보는 동전던지기놀이를 즐긴다.
어둠은 이제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다가온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계단은
벌써 사람들 차지다.
신나게 스쿠터를 타고 다니던 길은
지금도 돌바닥이다.
따로 명품의 거리에 들어서서
Sisley 상점을 찾아갔다.
접는 우산이 15유로, 니트는 55유로다.
카드를 내 밀었다.
VISA카드는 이제 세계 공통의 언어가 됐다.
저녁 19:20분
차는 스페인 광장을 떠나 식당으로 이동한다.
카페풍의 [한국의 집]
우와! 비빔밥이다.
우리 음식의 지평이 로마까지 넓혀졌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하였으니
여기서 사통팔달로 펼쳐나갈 일이다,
우리 음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