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

[동유럽배낭여행] Gmund 2005-오스트리아의 국경도시

강정순 2006. 3. 30. 21:10

 

Gmund로 왔다. Franz Josefs 역에서

11시 3분에 떠난 OBB열차는 

오후 1시 20분 가까이에 140km너머

Gmund에 도착했다.
19euro짜리 2등석 티켓인데

좌석은 항공기 Business급이다.
불과 몇 사람. 젊은 학생은 책을 보다 잠이 들었지만
나는 골프장 같은 전원풍경을 놓치지 않았다.

 

 체코로 가는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도시 Gmund

 

 

노랗게 타 들어가는 호밀 밭과 산림지대를 지나치며

Wien국립오페라극장에서 

미모와 풍부한 성량으로 인기를 누렸던

Agnes Baltsa의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그렇다.

카테리니 Katerini행 기차는 8시에 떠나가지만,

6월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이제는 밤이 되어도 돌아 오지 못할 사람이 아닌가.

노래속 황홀한 꿈을 꾸고 있는 데

아이를 안고 빛 바랜 여행가방을 들고

오르는  이가 있다.

그 가방을 선반에 올려주었더니 건너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키도 훤하다. 도톰한 아랫입술.

탐이 가는 입술이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데

아주 자연스러운 모성이 느껴졌다.

저런 모성은 범접할 수 없다.

검은 피부라선가 손톱이 희다.

 

 

버스정류장

 

다음이 Gmund입니다. 그러면서 그 여자가 일어선다.

다시 가방을 들어줬다.

처음에는 독일어로 감사를 표하더니

내가 영어로 from?

하였더니

재빨리 영어로 말을 바꾸었다.

남편은 Nigeria에 있고

자기는 House keeper로 일 한다는 데
외진 곳이어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여자의 도움이라도 받고 싶었다.
그녀는 다시 여기서 3km쯤 버스를 타고

시골로 간다고 했다.

 

체코로 넘어가는 오스트리아 check point

 

 

여기가 Czech Republic으로 가는 관문도시중 하나다.

인구 6,600명.
걸어서 20분이면 한 폭이 끝나고

1시간이면 길이가 다한다.
그런데 박물관이 있다. 호수가 있다.

집들은 얼마나 깨끗하던지.
도시는 공원을 만들고 사람들은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열린 창에는 붉은 색 화분이 놓여있다.
닫힌 세계 우리와 열린 세상 그들과의 대비가 극명하다.

Wien -Gmund간 전철사업기념표지석

 

공원 놀이터에는 물이 있다. 화장실이 있다.

여기가 내 거처가 됐다.
그런데 갑자기 놀이터가 한가로워졌다.

자연히 유색인종의 차지가 됐다.

두 여인이 데리고 온 그들 아이들.

아이들은 20종 가까이 되는 놀이 기구에 매달린다.

매일 안전검사를 해 가는 사람 덕분에

아이들의 천방지축을 충분히 감당해 내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곁눈으로 동정을 살피는 여인은 이슬람이다.

역시 호기심이 많은 것은 집시다.
큰 눈을 생글거리며

나를 볼라, 아이를 볼라 바쁜 여자는

제 나이 지금 서른 살이란다.
언어 중에 표정언어가 있는 지 모르겠다.

있다면 감성언어도 훌륭한 의사소통 수단이다.

이 여자는 지금 나에게

열정 이상의 관심을 보여줌으로써

나를 덥게 만들었다.
함께 있던 여자가 눈치를 챘음인지 자리를 비껴주었다.
두 손으로 가슴을 봉긋해 보이며 묻는다.
혼자인가, 왜 혼자인가.
나는 투르키에서 왔어요.

Turkey의 이 여인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망상이 요동을 쳤다. 팔꿈치가 닿았다.

속살 뜨거운 사람이라선가.

열기가 흐른다.
피할 까닭이 없다.

오늘 밤 광장에서 축제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몇 번이고 뒤돌아보며 갔다

 국경도시간 축제

 

광장으로 갔다.

카페로 변한 자리가 교회다.

교회를 중심으로 길게 상가가 늘어서 있는데,

좌우 2백미터씩의 거리가 광장이다.
[2005.6.24-6.25 Gmund/Ceske Velenice]의

축제가 오늘이다.

체코에서도 건너왔다.
사람이란 사람들은 이 광장에 다 모였다.

술이 있다. 담배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조그마한 도시에 어디서 이런 고급스러운

의자와 식탁을 가져다 놓았을까.
사람들은 사랑과 우정, 슬픔과 분노,

절망과 희망을 모두 가지고 나왔다.
아이들은 콜라를 마시고 어른들은 맥주를 마신다.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동안,

절대로 그들 세계로 빠져들 수 없는

동방인 하나.

그렇다. 나는 아웃사이더다.
검문을 통해 나를 익힌 경관이

잔을 들어 웃음을 보낸다.

곁에 선 아내의 저 눈부심. 황홀한 밤이다.

이들 세계를 지탱하는 것이 있다.

소방관 경찰 그리고 의사가 이사회의 기둥이다.

이들은 생명을 구한다.

그래서 소방차 순찰차 앰뷸런스가

모든 차에 우선한다.

이런 사람들이 존경받는 나라가 선진사회다.
그런데 이건 누구인가.

어둠 속으로 드러난 얼굴은 터키의 여인이다.
불과 몇 시간전의 여자다.

영화 'Before Sunrise'처럼 이곳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우리가 떠났던가.

이 여자는 맥주를 가져와 내 앞에 놓았다.

땀에 젖은 상의는 더욱 가슴을 드러냈다.

채식은 혜안을 낳고 육식은 투시력을 낳는다.

이 여자는

Belvedere궁전 반인반수상 여인보다

더 육감적인 가슴을 지녔다.
저 사람이 남편인가.

그랬더니 방향을 달리하며 등지고 선다.
마치 이런 것이 축제라는 듯이.

여자의 숨소리가 다가왔다.

술 아니어도 취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이 여자에게 있다.

큰 눈 속에 선선함을 모두 담았다. 가림이 없다.

마다할 것이 무엇인가.

내 타오르는 한숨은 거리의 불빛을 녹이고

투르크 여인의 용의주도함을 이끄는

촉매제가 되었다.
술은 춤을 낳는다.

춤은 경계를 허물어가며

자유분방함의 허용치를 넓혀주는 매파다.
끈끈한 밤이다.

나는 그녀의 감성언어 때문에 힘든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밤을  Gmund에서 보냈다

 

 Gmund 이정표

 

6주째의 월요일 아침.

Czech Republic으로 가는 관문도시

Ceske Velenice로  들어갔다.
체크포인트 근무자는

우리 나라 여권을 처음 보는 모양이다.
南인지 北인지를 묻는다.

사회주의국가여서 그렇다.

비자면제국 여부를 확인한  다음에도

그는 본서에 전화를 하고 나서야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프라하로 가는 길은 따로 있다.
그러니 누가 이런 궁벽한 곳을 찾아 들어

도보로 국경을 넘겠는가.
폭 2미터 정도의 다리가 나타난다.

아래에는 나무숲에 가린 그늘진냇물이 흐른다.

철조망도 없다. 군인도 없다. 검색도 없는 곳.

이곳이 국경이다.

반세기동안 서로 옥죄여 살아온 나로서는 느낌이 남다르다.
사상이 무엇인가. 체제가 무엇인가.

이념이란 쥐고자 하는 자가 더욱 누리고자 

어맨 족쇄가 아니던가.
애국심은 경계를 낳는다.

지구상에서 단일민족이라는 이름으로

7천만이 살아 가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남

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나라가 우리 나라다.

 Czech로 들어가는 국경도시 Ceske Velenice

 

 

변방이어선가.

고도 685m. 인구로는 Gmund의 반절도 못되는

3천 명 정도.  한시간이이면 그 끝에 닿는다.

끊임없는 순찰차.
이런 곳에 외지인이 나타 났으니 일중 일이 됐다.

도시의 중심은 교회다.
어느 곳에서나 눈에 띄는 곳에 교회가 있다.

가서보니 못질이 삭아 있었다.

먹고 자는 것을 밖에서 구해야 하는 나로서는

공원이 문제가 됐다.

물이 없다.  야영지를 거리에서 구했다.

우리로 치면 보호수인데,

슬래브어로 푯말이 서 있다.

공유지이므로 양해를 구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담장주인에게 뼘을 재어가며 이해를 구했다.

쳐놓은 텐트가 명물이 됐다.

머리쪽 높이 50cm에 발끝이 30cm.

간신히 몸만 누일 수 있다.
더구나

혼자라는 표시가 분명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호루라기를 하나 사서  끼고 잤다.

이를 넘겨다보는 사람이 있다.
누구냐.

사라지기에 보니 세워놓은 차에 한 사람이 더 있다

이 텐트 건너편에 거리의 여자가 있다.
친구를 기다리는가, 하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인다.
손으로는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면서도

눈은 연신 지나가는 차에 가 머문다.

혼자 타고 가는 이를 기다리고 있음이다.

손을 흔든다.

멈춰서는 차가 있다.
문이 열린다.

그런 뒤 함께 가서는 얼마 후에 다시

그 자리에 와

담배를 피워  물고앉아 있다.
자연 잠은 체코 땅에서 자고

낮시간은 오스트리아로 가서 보내는

東家食 西家宿의 생활이 일주일간 이어졌다.

먼동은 4시에 튼다.
이번에는 자동차 통행로로 체코의 검문소를 지나는데

모습이 여리다.
그녀는 컴퓨터에서 게임을 하는 중이다.
차오!
대신에 Good Morning! 이래주면

지나가도 좋다는 신호를 해온다.
영어를 모르는 슬라브족은 물음이 없어 좋다

 

저녁나절 보행자도로를 건너온다.

이 도로는 아침 7시부터 오후 7시까지만 

통행이 허용된다.

사람들은 Gmund에서 물건을 사간다.

타고 가던 자전거 에서 내려 함께 걸어주는 여자는,

못 보던 얼굴이라며 베트남이냐고 묻는다.

월남인들만 보아온 탓이다.

[Asian Market]이라는 간판은 모두

월남인이다.
하노이쪽 사람들이라는 게 부담이 됐다.

조심스레 걷다보면 또 다른 거리의 여자가 나타난다.

애띈 얼굴이다. 너무 일찍 거리에

나선 것이 안됐다.

 

작은 키 작은 몸매의 아이가 이런다.
Sex. 그러면서 그곳을 툭 건드린다.
이 아이는 어떻게 하면

남자를 혹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교습과

독학이 경험까지 더하여 충분히 익혀진 모양이다.

바쁠 것 없으므로 맞장구를 쳐주었다.
How much?
제나라 슬라브어와 독일어밖에 모르는 이 아이는

내 말이 갖는 말의 수순을  짐작하여

세 손가락을 하나씩 세워 보인다.
3euro? 이렇게 써 보이자 300이라고 고쳐 쓴다.

성사를 목표로 응대하지 않았으므로

이 협상은 애초부터 결렬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나도 웃고 저도 웃는다. 그리고 갈라선다.
30euro면 되겠다, 너는.
우리말이므로 이 아이가 기분 나빠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