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4대 성지] 부처가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
쿠시나가르 Kushinagar는 석가모니가 숨을 거두고
열반에 이르렀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한 곳으로
어느 순례지보다 명상의 시간을 갖기 알맞은 곳입니다.
이곳 쿠시나가르도 벼농사 위주의 농촌마을입니다.
야산 하나 없는 허허벌판 가운데 다비장이 있고
1.5km 거리에 사리탑이 있습니다.
이곳을 가기위해서는
고락푸르역 앞에 버스 스탠드에서 떠나는
버스를 탑니다.
2,30분 간격으로 있는 데 버스비는 56R/s
도로 사정이 좋아 한시간 반 정도 걸려 갑니다.
외국배낭여행자가 쿠시나가르를 가는 목적이
부처의 열반 유적을 찾아가는 것임을
아는 버스 차장은
하차지점에 이르전에 내릴 준비를 하도록 알려 옵니다.
내린 곳에서 길을 건너면 유적지로 이르는 길인데
아래 사진의 사리탑까지는
4백미터쯤 걸어가는 거리에 있습니다.
사리탑의 정문을 지나쳐 100m,
그러면 도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동으로 뻗어있는데
200m쯤 더 가면
왼쪽으로 Tibetan Temple이 나타납니다.
25개의 객실을 가진 근사한 사원입니다.
천장 선풍기에 기대어 더위를 이겨낼
자신만 있다면 이곳을 거처로 삼고 이틀정도
머물다 가기 좋을 곳입니다.
숙소의 북쪽 담장 너머가
Mahaparinirvana 사원 입니다
안쪽은
굽타 왕조의 쿠마라굽타 1세Kumaragupta I.의
재위 기간에 건설된 Der Nirvana-Stupa이고
바깥쪽 열반 사원에는 6m 길이의 금박을 입힌
석가모니가 누워있는 와불이 안치되어 있는 곳
80세에 이른 석가는
그 이름으로 하여 모든 이들의 칭송과 환대를 받습니다.
부처'라는 말은 Old'라는 말입니다.
어르신'이라는 이 말은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분으로 대접받았던 것입니다.
예수 당시 세계 평균연령이 30세 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그 보다 5백년 전의 석가모니는
어르신 중의 어르신이었다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기 마을로 한 번 모시겠다는 청원에 따라
쿠시나가르 이곳 토호세력가의
초대를 받아 갑니다.
그를 따르는 자가 3천'이라 하였음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는 뜻으로 보면 됩니다.
마을에서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몇 날 며칠간
부처일행을 위한 음식장만을 하였을 것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더운 날씨 속에 음식이
온전하였겠습니까.
음식을 받아 든 제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 음식이 상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드시지 마소서
그 말에 부처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 더운 날 우리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준비했을
음식을 물리쳐서야 되겠느냐
그러면서 돼지고기 음식을 다 비웠다고 합니다.
상한 음식을 먹고 부처는 몸져 눕습니다.
이미 80 나이입니다.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제자들은
王'이라 표현되는 주변의 부족장들에게
사발통문을 보내게됩니다.
- 우리의 스승님이 아무래도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죽게됩니다.
열반涅槃에 들었다는 표현은 존칭일 뿐 죽음,
돌아가심과 매 한가지입니다.
죽은 뒤 화장에 든 곳이 지금의 이곳,
위의 사진입니다
그 때 나온 부처의 진신사리가 8만 4천개라는데
그 말은 많은 사리가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화장(다비)을 마친 뒤 수습한 사리는
이곳 보리수나무 아래로 옮겨지게 됩니다.
화장터에서 이곳 까지
직선거리로 400m쯤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온 사리는
8개 부족장에게 나누어 집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명판에
부족장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곳을 가기위해서는
Wat Thai Complex가 끝나는 곳에서 소로를 따라
200m정도 들어가면 됩니다.
큰길가에 표지판이 하나 서 있습니다.
부처가 죽음을 맞이했던 자리에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저리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