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국 12.3.4
40년전쯤 4년간 이 길을 걸어다녔다. 지금 보이는 [필동반점]이 창립 30년이라 하고
있으니 그 후의 일이 된다. 이쯤에서 대학교가 보였는 데 건물에 가리고 말았다.
어머니한테 저기 저쪽이 대학교'라고 알려드렸는 데 당신께서도 73년 졸업식때
한번 가본 곳이니 기억이 분명치 않을 일이다.
시간의 저편 너머에 여러 사람들이 떠올랐다.
두루마기를 차려 입으시고 강의에 나오던 미당 서정주 선생님,
문학평론가여서였을까, 현대문학'지를 주간하던 조연현교수는 강의중 하나도 군더기
말이 없으셨다.
맥주만 한 상자 사면 주례를 서주마'던 양주동박사....모두 이승의 길 너머로사라졌다.
충무로는 영화의 거리다. 내가 69년에 서울에 와서 대한극장의 육교를 건널적
[벤허]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멀티영화관으로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
벤허'후로 [사운드 어브 뮤직] 혹은 [닥터지바고]가 상영되던 대한극장은
70년대 초 서울에서 제일가는 극장이었으나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하고 졸업을 했다.
그 때는 돈이 없어 들어 가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마를대로 말라버린 감성이 거기
가는 것을 마다하고 있다.
시간을 내어 서울로 온 것은 사진속의 이 두사람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와서 보니 신랑신부가 우리 사위와 같은 CJ홈쇼핑에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CJ인재원]에다 식장을 마련한 것이야....
학군장교출신의 신랑을 아들로 둔 혼주와는 35년정도의 지기다.
오산비행장근무를 마치고 공군본부로 전속을 온 중위때부터였으니 그 정도 된다.
그 뒤로도 다시 두차례 공군본부 근무를 하게 되는데 그 때 마다 같은 부서에서
신랑의 아버지를 만났다.
인연이라면 신랑신부보다 더 오랜 인연이어서 만사를 제쳐두고 서울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 사이에 여자 노인회장께서 전화를 주셨다.
- 이장님 점심 대접있다고 방송하셨어요?
- 아니요
이웃마을의 방송을 그리듣고 경로당에서 전화를 해 온 것.
어느 곳에 있든 통신축선상이다.
마을에서 한옥신축을 희망하는 농가가 두어분 계시므로 혜택을 드려야겠다' 싶어
담당공무원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통화도 몇차례...그랬는데 서울길에서 전화를
받았다.
-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것은 추가 예산 편성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기대를 하고 기다리실 것 같은데 사업지원이 없으니 너무 기대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휴일이어서 더욱 조용한 마을이다. 오늘 이 비는 화요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냉이를 캐와 씻고 보니 손바닥 가득 봄이 뭍어 나왔다.
- 저녁에 두사람을 초대하면 안될까?
숙성이 잘 된 동동주가 한 병있다. 김한식씨도 애주가가 분명하니 함께하면 좋겠다,
그랬더니
거둬온 달걀을 선별하고 있던 아내가 교회에 두 내외 모두 안보였다고.
- 그러면 혼자 있는 총각들을 부르지 뭐
냉이국 한그릇 가지고도 부름에 거침이 없는 것은 나의 무모함에 있지 않다.
거두어 먹이는 일에 재미있어 하는 아내로 해서 인 것.
시골생활, 별 것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