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지 않는 한국인
진눈개비가 눈이 되었다.
요가를 시작하려 外燈을 밝히다보니
눈은 난분분 흩날리고 있었다.
한 시간 반 金剛善法을 마치고 났을 때는 눈으로 쌓였다.
12월을 눈으로 시작하는 달이 되었다.
海州吳氏들의 時祭가 12월의 첫날이다.
음력으로 10월 10일.
올해는 윤달이 들어 보름쯤 늦다.
‘艮田골짜기 비오나 마나 吳家들 時祭 지내나 마나’
라는 소리가 있다.
간전 쪽으로 기압골이 걸치기로
이쪽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이야기고
오씨들이 시제 지내봐야
술 한 잔 얻어먹을 일 없다는 自嘲風의 소리다.
인색함이 아니다.
형편이 다들 녹록치 않던 시절을 났다.
권속眷屬은 오죽이나 많은가
일가들이 모이다보니 남는 것이 없다 할 것이다.
먹고 살만 해야 예의를 말할 수 있다.
베풀고 나눌 만큼 넉넉지 못한 세상 속에서
‘吳가들 시제 지내나 마나’ 라는
소리가 생겨났다 할 것이다.
그런 시절을 뛰어넘어 좋은 시절이 됐다.
李가 金가 타성받이들이 한 차례 드나들며
술에 고기를 대접받고 난 뒤
취기가 오른 有司가 찾아왔다.
한 잔 술이 담는 뜻이 무엇이겠는가.
술은 그 속에 앙금을 녹여 정으로 들어온다.
소주를 밑에 깔고 맥주로 말아
그 잔을 비우고 났을 때쯤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떠올랐다.
- 그 때는 떡 한 조각이라도 하나 더 주워 먹으려고 야단했지다
- 떡 한조각도 컸네.
- 그 때는 유자가 귀해서 그런지
시제 끝나고 나면 유자를 먼저 가질려고들 해 쌌는지.
음복술에 취한다는 말이 그런 시절에 나왔을 것이다.
경건해야할 자리가 時祭다.
喪家집 술로 취하고서 부린 醜態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러니 조신해야할 자리가 그런 데 아니겠는가.
가을걸이가 다 끝날 때를 잡아
時祭를 지낸 데는 그럴 까닭이 있다.
돈 되는 것이 없던 시절,
곡식을 내다 팔아야 돈이 됐을 일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일이다.
淸明寒食이 든 그 週의 토요일을 우리는 잡고 있다.
- 우리도 봄으로 옮길까 생각중이네
조상귀신도 발품을 팔아야 얻어 드실 세상이 왔다.
18세기는 蒸氣가 세상을 받치는 원동력이고
19세기는 電氣.
20세기는 데이터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하고 있다.
정리 분석하지 않은 데이터는 아무 의미가 없다.
마을사무는 주민총회로 종결된다.
두 가지를 해야 하는데
결산보고와 다른 하나가 서류정리다.
영농이장이라면
농협 쪽과 산업계 문서가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마을은 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어있다.
이 쪽 문건이 적지 않다.
年年이 이어지는 마을평가로 大尾를 내린 것이 지난 11월.
관계 자료를 서류철로 묶어 놨다.
내년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마을일을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
그것이 마을일을 보는 나의 일관된 자세다.
그리고 그런 기록들을 공유하게 하고 있는데
그래야 마을일에 軌가 바로설 수 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일본 본토를 향해 破竹之勢로 밀고 올라가던
미군들이 노획한 물품 중에는
日軍장교들이 쓴 상당수의 日記帳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포탄이 작렬하는 塹壕속에서도 일본군 장교들은
수첩에다 깨알 같은 글씨로 매일 매일 일기를 쓰고 있었으며
그 日記가 미군에겐 중요한 정보자료가 되었다는 것이다.
商人들이 출납 장부를 정리하던
幕府시대의 전통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본인들의 꼼꼼한 기록정신은 확실히 놀라운 데가 있다.
靑酸加里의 맛이 어떤가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청산가리를 먹은 어느 의과대학교수가
[청산가리의 맛은…….] 까지 써놓고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逸話도 일본에서 나온 이야기다.
일본의 해외주재 상사 요원과 특파원등이
근무지의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기록해 두었다가
후임자에게 넘겨주는 일은 하나의 慣例처럼 되어있다.
12월이 되면 일본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이 일기책이다.
우리는 찾는 사람이 없으니 만들지도 않는다.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일본 대표단은
이를 수행한 요리사까지도 일지를 남겼다.
1893년 閔泳煥을 대표로한 우리나라 미국 사절단은
아무도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 동안 당쟁黨爭과 사화士禍 속에서 살아서였을까.
기록을 잘못 남기면 무슨 화를 받을지도 몰랐기에
그래서 기록하는 버릇을 잊어버렸다는 풀이도 있다.
[이장일기]만 해도 내리기를 몇 차례 했다.
李承晩은 회고록이나 實記를 남기지 않은
대통령에 속한다.
정부수립때 미군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남북협상이나 제헌 때의 속사정은 어떠했으며
下野때 어떤 곡절이 있었는지,
왜 그렇게 무리를 해 가면서
3선, 4선의 장기 집권을 꾀했는지 등등
그런 속 깊은 이야기를 해 놓지 않고 갔다.
5.16 쿠데타의 배경이라던가
韓日국교정상화 때 일본 사람들과 오간 이야기,
70년대 초반의 남북회담을 둘러싼 곡절등
깊숙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다.
그런데 朴正熙역시 어떠한 手記도 남기지 않았다.
개인으로도 극한상황은 고사하고
일상적인 상황마저도 기록하지 않고 산다.
고려자기나 청기와 만드는 법이 전수되지 않는 것도
그 만드는 과정을 기록해 두는
기록성이 박약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마을일도 잘되고 잘못되고 하는
試行錯誤를 기록하지 않으면
그 기록을 바탕으로 한 기술축적이나
업무발전이 전혀 되질 않는 법이다.
이번에 뉴질랜드 오클랜드와 호주 시드니 일원에서
6일간 체류를 하게 된다.
지리산 효 장수권역에서 14명이 나서는 데
다들 보고 느낀 바를 기록으로 남기도록 할 셈이다.
이런 기록들이 권역 운영계획서 수립에
기초자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