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

겨울 동지

강정순 2013. 12. 22. 12:53

 

밤이 길다는 것은 낮 시간이 그 만큼 짧다는 것이다.

 

오후 5시가 되면 이미 해는 져서 밤으로의 긴 여행이 시작된다.

 

이 때쯤이면 가로등이 켜지고 여자노인당에서도 퇴실을 시작한다.

 

- 이제 퇴근하세요?

 

내 인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점심때 남은 밥으로 저녁까지 마쳤으니

 

이제 잠자리에 드는 일만 남았다.

 

9시 이전에 잠이 든다고 보면 된다.

 

그리곤 다음날 새벽같이 불을 밝히는 데

 

마을의 밤은 나이 역순으로 동이 튼다  

 

 

 

 

 

                                          

바빠할 것도 없다. 7시가 되기로 여기선 동트기 전이어서

 

이런 시간대에 마을방송은 들을 사람이 없다.

 

겨울은 그저 방 따신 것이 제일이어서 창문도 겹겹이 닫아놓고

 

눈 뜨면 유선방송 켜놓고 누웠는데

 

이 때 방송이 온전히 들릴 리가 없다.

 

- 아침에 뭐라고 방송했는가?

 

그러면서 회관으로 내려오는 분이 두 분 있다.

 

보청기로도 미치지 못하는 소리이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한 해 한 해 들어가는 나이는 소리가 멀어지고

 

- 문을 닫아 놓고 사니까 통 들리지 않는단 말이시

 

그래서 이렇게 하는 말도 이해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방송을 하게 되면

 

마을회관 알림판에도 그 내용을 부착해 놓고 있다.

 

검색하는 마을분이 몇이나 있을까 마는

 

[구례 상사마을] 카페에도 올려놓고 있다.

 

그럼에도 못 들었다, 몰랐다, 하는 분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럴 때면 노인당에 오셔서 마을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라 이르고 있다.

 

그렇다.

 

겨울 한철 노인당은 세상 돌아가는 소리가 모이는 아크로폴리스다.

 

 

 

 

 

 

 

11월 부터 노인당의 점심이 각자 차려진다.

 

그 동안 여자노인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여와 보기 좋았더니

 

홀로 서기에 나선 것. 여자노인당은 한 짐 덜었다 할 것이다.

 

노인당의 겨울양식은 넉넉하게 지원이 되고 있다.

 

김장김치도 보급이 됐다.

 

나오는 돈 가지고 아껴서 난방비도 충당한다.

 

여기에 매달 9만원의 반찬비까지,

 

그야말로 최소한의 복지가 시골마을노인당에선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경로당지원금은 가입 회원 수 비례해서 나오므로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 들어보려

 

애쓰는 데 아직도 먼 나이 이장에게도 이런다.

 

- 이장 언제 예순다섯되는거야?

 

 

 

 

  

오늘이 동지. 여자노인당에서 동지팥죽을 쑨단다.

 

아니 그런다면

 

단새미cafe‘ 만들어 낼까, 하였더니

 

작년에 사서 먹어보고 나선

 

올해는 직접 쑤어먹겠다한다.

 

점심때 오라는 주문은 받아놓고 있는데,

 

이 동지팥죽 먹고 나면

 

시골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

 

아직도 유효한 세시풍습아닌가 싶다.

 

 

 

 

 

 

이어지는 연말 그 들녘에 놓인 크리스마스.

 

단새미cafe에도 일찌감치 트리가 세워졌다.

 

지난주에 산야초동호회원들이 산행에서 가져온

 

노송나무도 한 그루 cafe 앞에 놓여있다  

 

 

 

 

 

교회에서는 25일 낮 시간 마을 분들에게 떡국을 대접한다고 한다.

 

- 그냥 갈순 없잖은가

 

그러면서 얼마씩 봉투에 담을 것부터 걱정하는 어르신들에게 이래준다.

 

-그냥 가셔도 돼요.

 

그렇다고 그냥 가실 분들이 아니다.  

 

 

 

우레탄 방수공사를 끝낸 경노당 옥상

 

 

단새미cafe에서 피자만들기체험을 제공한다.

 

24일 오후. 마을 분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라 해두었는데

 

그 시간에 참여가능한 분들이면 마을분이 아니어도 참여할수 있다.

 

우리 마을에는 일정한 자격을 가진 자원봉사자들이 넘쳐나 있는 곳.

 

그 분들이 재료대 1만원으로

 

한 가족의 겨울밤을 훈훈하게 만들어줄 피자교습을 해줄 것이다.

 

재로준비관계로 하루 전 예약은 기본이다.

 

 

 

 

 

 

 

여름 손님은 송장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다.

 

겨울손님이라고 다를까.

 

겨울 한철 손님 받기를 마다하는 집이 있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데 사전에 마을 카페나 전화로 신청하지 않고

 

당일 마을인접해서 오는 전화손님은 방법이 없다.

 

어제 오후 전화가 그렇다.

 

항상 손님을 받지 않고 둔 방이라

 

군불 넣어 방 덥힐 일 안하겠다는 거절이 이어졌다.

 

- 늦게 가니 괜찮습니다.

 

라고 하나

 

이 겨울 춥게 자고 나서 일행 중

 

감기환자라도 나오면 민박집에 더하여

 

마을 이미지만 실추되는 것이어서

 

겨울 민박손님 받기가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사전에 예약을 해주면

 

본인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곳에서

 

편한 잠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을 일.

 

아니라면 화엄사 가는 길의 다양한 모텔로 찾아들어야 할 것이다.

 

 

 

 

 

 

 

마을회관에다 지리산둘레길 탐방객을 위해 도미토리를 운영하고 있다.

 

2층 침대에 1만원씩.

 

이 겨울이 지나면 문을 열어둘 것이다.

 

그 때 쯤이면

 

마을회관 건물 전체에 단체민박손님을 밝혀주는 외등도 켜질 것이다.   

   

  

 

 

NOTE:

 

 

  • eddy  2013.12.25 00:24 
훌륭한 이장이 있는 상사마을이 볼수록 부러워지는구먼~~
사람사는 곳 같아...
 
 
 
미미한 힘이나마 보태보면 마을이 나아질려나, 그러면서 시작한 지 어언 3년
이 일도 한계에 이르렀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가는 것이어서
왜 이 고생을 내가 사서할까,
무엇을 얻겠다고, 그럴 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