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는 손
한가로운 3월의 아침이다. 시절은 춘삼월.
차다 싶을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런 바람이 속적삼을 파고들었단다.
몸서리나게 고생도 했다는 분들의 이름을 적어가며 문패 만들 준비를 시작한다.
[도로명 주소 가족문패달아주기]
지번주소가 도로명 주소로 바뀌는 지금,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에서
구례군 마산면 장수길이된다.
배우자의 이름도 같이 넣는다.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마을의 동쪽방향 ( 3. 1)
마을카페에 올라온 청장년들의 보름행사 결산에다 댓글을 올렸다.
[아주 잘된 행사입니다.
임원여러분의 노고에 힘입어 날로 좋아지는 보름행사가 됐습니다.
우리 마을의 미래는 청장년 여러분입니다.
천년에 이른 오랜 마을
그리고 새천년을 준비하는 미래의 마을
이름하여 [오래된 미래마을]의 주역으로 여러분에게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앞으로도
이번만큼만 해 주세요 ]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마을의 서쪽방향 ( 3. 1)
바깥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사람들은 밖으로 들로 나돈다.
자연스레 경로당의 점심준비는 80줄 노인들의 몫이 되었다.
그 점심을 겸연스레 먹으면서
중순에 마을을 비우게 될 시애틀여행이야기를 해 드렸다.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민화투를 친다.
천원 묻어놓고 판판이 빼먹기.
천원을 따로 묻어 [돼지보기]도 곁들이는 자리에
길손이 찾아왔다.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마을의 남쪽방향 ( 3. 1)
지난 해 12월 우리 마을을 찾아들었던 사람이다.
지리산둘레길을 답사하러 내려온 그 때 일행은 세 사람.
화엄사방향에서 오던 마을분이 휴대전화를 주워왔다.
그렇게 해서 지은 인연이라선가.
남도로 오는 길이 있어 이 부부가 마을을 찾아왔다.
그 때는 경황이 없어서 그냥 갔다며
베지밀을 한 박스 든 채.
누구였을까. 얼마지 않은 일도 이렇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이가 사람을 먹어가는 때라 그렇다.
명함을 놓고 가시면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랬더니 명함이 없다면서
이장의 업무수첩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가며 이런다.
- 글씨가 반듯하시네요.
유정란을 접은 지 한 달.
그곳에 묶인 개들 중 하나가 새끼 여섯을 낳은 지 한 달이 됐다.
같은 날 닭이 나간 자리에 새끼 강아지가 들어선 것이어서
날마다 내 소일거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마을의 북쪽방향 ( 3. 1)
해가 기운다 싶은 시각,
농장에 있는 나를 불러 내린 것은 서울손님이다.
차독배기에 모신 부모산소를 둘러보러 온 것인데
50만원을 선선히 쾌척하고 갔다.
고마운 일이다.
마을에서 자라 출향한 이도 이리해 본 사람이 없다.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플래카드가 마을 입구에 내걸린 일은 있어도
찾아들지 않은 출향인이다. 하물며 돈을 내놓을까.
그런 세상 인심속으로
손위누이가 시집 와 살다간 마을에다
한두 번도 아니게 희사를 한다는 것은
그것도 누이가 죽어간 지 몇 년 된 후에도 이리하여
빛나는 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