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이장일기
짧은 한 달이다.
2월은 자식 여럿 둔 집의 가운데 자식 같다.
정월에 입춘이 모두 2월에 들었으나
시작의 처음으로 자리매김을 받지 못한다.
1월에 치이기 때문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은 2월처럼 반가운 달이 없다.
3일이 어딘가.
그러나 월세를 내어가며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서는
이 3일이 피와도 같은 눈물이 된다
.
조합에서 주는 돈 10만원은 통장정리를 해보면 알 일인데
면사무소에서 주는 2월분 20만원은 농협통장에 들어왔다.
이장이 준공무원이라고 그러는 소리가 매달 주는
이장수당으로 해서인 데,
이것이 월급이라거나 준공무원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2월 한 달 동안 하는 일로 봐서는
공무원의 하도급 십장쯤 되지 않을까
병아리 신청을 하란다
퇴비는 지방보조비까지 지원을 받아 포당 1,600원씩
못자리 상토에 친환경 필지 조사를 마쳤더니
영농자금 대부 신청이 이어지고
황금누리를 비롯한 볍씨 분배를 끝내지도 못했는데
2월이 가고 있다.
마음을 먹고 창고정리를 해봤다.
두 칸의 창고를 한 칸으로 줄이면서 정리를 해본 건데
창고라는 것이 닫아두는 곳,
잠금장치를 해 두는 곳이어서 그런지
평소처럼 외지고 한데라는 생각이 내내들었다.
그런데 추웠다.
창고 정리는 맘속에서만 짐이 됐다.
손을 봐야지
정리를 해야 하는데
그러면서 2월 중순이 됐다.
벗어나고 싶었다.
나를 압박하고 있는 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는 길은 창고 속으로 뛰어드는 것,
그래서 먼지투성이의 창고 속에서 이 달 하순을 보냈다.
벽에 붙은 2009년 달력도 떼어 냈다.
바닥을 쓰는 일은 대단한 인내가 필요했다.
1평쯤 쓸고는 밖으로 나왔다.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있는 데
이장이 하는 것이 안 돼 보였던지 이런다
- 면사무소에 이야기해서 공공근로를 부르지 그런가.
내 손으로 치워두고 싶었다.
지게는 지게대로 줄지어 세우고 3
개의 발대는 지게 옆에 놓아 보았다.
1종은 1종대로 2종은 2종대로,
군대식으로 예를 들면 그렇게 정리가 된 셈이다.
2월 7일 추위가 다 갈 때쯤
태양열 집열판설치 공사가 시작됐다.
1억에 가까운 예산이 드는 일이어서 그랬는가,
이 공사는 작년사업이다.
그리고 관급공사여서 자부담이 안 들어가는 사업이다.
마을로서는 완성되기만을 기다렸다가
더운 물 따신 방을 유용하게 쓰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말이 나왔다.
- 무슨 놈의 동네 인심이 이런지 모르겠다.
샛거리를 한번 주나 밥을 사주기를 하나.
인부의 푸념을 받아와선 이장댁한테 알리는 사람이 있었다.
- 먹는데서 인심 나네.
그러면서 이장이 알아서 한두 번 샛거리를 먹이소
하는 사람도 있고
즈그들이 돈벌이 왔으면 업자가 주는 것이지 마을에서 무슨....
그러면서 경우에 맞지 않는 소리를 한다며
역정을 내는 분도 있었다.
무슨 놈의 동네가 이렇게 야박스럽단 말인가.
잠시 낯이 뜨거웠다.
엄밀히 따져보면 점심을 먹이는 일이나 샛거리는
시공업체가 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 마을에 구판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공업체 관계자도 한 주일에 한번정도 다녀가는 정도여서
처음 한두 번 샛거리를 차려서 내놓은 것이
당연한 것처럼 돼버렸다.
집에서 노가리를 가져오고
사무장의 양다래가 깎여 접시에 담기고
캐비넷속 맥주 두 병씩이 24일 목요일까지
그렇게 이어졌다.
정월보름행사에 쓰고 남은
청년회 맥주가 아니었다면 어찌 됐을까.
25일은 반상회가 있는 날이어서
그 전에 시험가동을 마쳐줬으면 좋겠다는 주문은 했다.
주문은 한 가지 더 있다.
창고안 기계실 공간을 반으로 나누어 샤워장을 만드는 일,
그러니 배관을 하나 이어줬으면 좋겠다, 까지는 주문을 했다.
시공업체로부터 어떤 제공도 받지 않았지만
무한제공을 해본 우리 마을 샛거리
24일 오후가 되자 인부들이 떠나갔다.
이렇게 인정머리가 없는 동네는 처음 본다, 던 인부들은
간다 온다 소리 소문 없이 우리 마을을 떠나갔다.
갈망했던 25일의 시험가동도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2월의 문화강좌는
[우리 마을과 梅泉선생 그리고 道詵국사]다.
순천대학교 홍영기교수는 우리 마을로 입택해온 분 중
제일 먼저이면서 마을회관을 앉히는 일에서
한문서당 標識石을 세우는 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지도를 해준 분이다.
오늘의 이 강의를 마련하기 위해 거처로 찾아갔다.
그날따라 보기드믄 눈이 내려서
잔디로 깔아 심은 마당을 밟는 감촉이 남달랐다.
안채에서는 [빵순이]들의 대화가 한참 진행된 후여서
내가 들어갔을 때는 제빵지도자양성책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별채 사랑방에 들어 찻잔을 여러 번 비우고 그랬는데
우리 마을을 문화마을로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나의 생각에
공감을 하였던지 선선히 응낙을 해주었다.
- 학생들에게 강의 준비할 때보다 더 준비를 오래하는 것 같다.
어부인께서 그런 소리를 한 모양이다.
아니다. 사모님이다. 아니 학교에 계시니
오선생님이라는 직함으로 불리어도 좋을 분이
그런 소리를 한 것은 이 강좌의 준비에
그만큼 정성이 들어갔다는 이야기이고
결코 허술한 강의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귀를 넓히는 것, 그리고 눈을 뜨이게 하는 일로
이달의 강좌가 이어지는 데 올만한 사람도 안나오는 걸보면
마을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인정은 한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기 싫다는 사람한테는 어쩔 도리가 없다.
마을의 村長이라고 하는 이장은
열 마리의 양을 물가로 인도하는 것 정도,
다음 달의 문화강좌는 내 걱정이 아니다.
나는 지금 4월의 문화강좌를 모색하고 있다.
석 달간은 외지에서 마을로 들어온 분들을 통해
세상의 일들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면
4월부터는 외지에서 마을로 온 분들에게
우리 마을사람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려줄 셈이다.
이를테면 [고재순의 세상사는 인생이야기]
어떤가
우리 마을의 반절 이상은 여자다.
세상의 반절은 여자가 아닌가.
그런데 예부터 班常이 분명하고
남녀 간의 法度가 분명했던 곳이 우리 마을이다.
그러니 우리 어머니들이 세상다운 세상을 살아봤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변한 세상을 인정하지 않은 데서 갈등이 생긴다.
인정하기 싫은 변화를 여자들은 이미 변화의 중심에 들어가 있다.
마을의 작은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이장의 마음을 헤아렸음일까.
부녀회에서 기금의 반절에 이르는 돈을
마을 돈으로 쾌척해준바 있다.
나로선 마음의 짐이어서
오래전부터 치하를 드리고 싶었다.
저녁 한 끼 먹는 자리를 마련해보라고 하였더니
냇가 다리건너 이길원씨 집으로 정하였단다.
- 음식이 어떠네 말이 있지만
우리 동네 사람꺼 안 갈아주면 어찌된다요
그러면서 모이길 열 명.
닭백숙 두 마리면 어찌 적지 않으려만 안 적었다고,
그러면서 가난한 이장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정말이지 이장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강하든 아니면 약할대로 약한 사람이어야
이장 해내지 어중해서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투표로 당선된 이장은 일정한 배타층을 가지고 출발했다.
아무리 내가 마을주민간의 화합을 도모한다고 해도
끝내 이룰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거기다가 일마다 처음 겪는 일이다.
일 년 정도 이 일을 하고나면 개념이 생길 것인데
아직은 책잡힐 일이 많다.
그러니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알고 시작한 일이므로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이장과 마을주민간의 눈높이가 다르다는 것
내가 낮추느냐, 마을 분들의 눈높이를 높이느냐.
그 사이에서 잠시 갈등도 한다.
- 마을 분들이 뭐라고 한다고 해서 그
때마다 반응하지 마세요. 일 못합니다.
옳다싶으면 이장님 소신대로 밀고 나가세요
-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확 바꾸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변화를 시켜 나가는게 좋을 겝니다.
-다 끌고 갈려고 하지 마세요.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이익이 간다.
참여하지 않는 자에게는 불이익이 간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세요.
그런가.
이 두 달간 어둠속 터널을 들어서서 한참을 헤맸다.
상사마을 까페속 이장 업무를 잠시 내려도 보았다.
어느 사람은 지지자가 되었고
어느 사람은 방관자가 되어버린 이 마을 속에서
그래도 아직 희망이라는 끈을 놓지못하는 것은
마을 어느 원로분이 말한 바대로
[때 묻지 않은] 이장에게 거는 마을 주민들의 기대가
너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둠의 터널을 나서니 3월의 봄볕이 그립다.
NOTE:
- 강정순 2011.03.23 07:09
처음부터 땅을 사고 집을 지어 가는 것보다는
한 해 정도 세들어 살면서 요모조모 따질 것 따져보고 그런 뒤에 집을 지어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