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과 장례식장
딸아이가 전화를 해왔다.
딸도 서럽고 애비도 서러운 통화
안다,네 심정을 어찌 모르겠느냐. 그러니 너희끼리 열심히 살거라.
그런 소리를 전하면서 꿈인데도 울었다.
해가 바뀌어도 전화한번 안하는 딸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애비가 먼저 하면 될 일을 가지고
애비는 꿈속에서도 서럽다.
청첩을 받아들고 광주로 갔다.
전남대학교 쪽에서 내려 걷기를 얼마쯤,
그러다가 길을 물었다.
차려입지 않은 모양새의 중년이
내 말을 듣고 길을 일러 주었다.
곧장 가다보면 굴다리가 나온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그런가.
이미 길을 나서기 전에 인터넷으로 지도검색은 하고 왔다.
나름대로 아니다 싶어 다시 오는 데
길을 일러주었던 중년도 되오다 그 쯤해서 만났다.
내가 가다보니 잘 안알켜준 것 같아서 되오요.
그러면서 상기된 채 말을 잇기를;
청소차 운전을 한단다. 그래서 모르는 곳이 없는 데
길을 일러주고 나서 보니 거기가 아니다 싶어
이렇게 잰걸음으로 온 것이란다.
가던 길을 되돌아 왔기에 그렇지
아니면 이분의 걸음이 어디까지 왔었을까.
결혼식장을 다녀와서 아내와 함께 장례식장에 갔다.
딸만 셋을 두고 喪配를 맞았으나
오히려 차분하게 소천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랜 투병이 죽음을 예고했음인가.
아니 이미 울만큼 울어버려서인가.
딸들도 이별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만큼
이미 약속을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
남은 인생 길어봐야 잠시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속하기를 간구하는 것은 우리들 생각일 뿐
그러니 앞서가는 이를 추모하는 것도,
남아 있는 이를 위안하는 것도
길게 바라보면 다만 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