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

우리 동네 대실댁

강정순 2010. 7. 1. 21:13

   

격주 금요일마다 보훈병원으로 가는 셔틀버스. 

8시에 싣고 가서는 다시 3시에 구례로 왔다가 빈차로 되돌아간다. 

발치를 하나 하고 보철을 입힌 것이 저 지난 달.

잇몸 사이로 틈새가 있어서인가. 냄새가 난다고 한다.

- 나는 모르겠던데?

- 마누라나 되니까 살아주지 그 냄새 맡고 살아줄 년이 있나 보시오

그런가. 부부로 정분을 나눈 지 30년.

이제는 입 맞추는 일도 없다.

 

3시에 버스가 보훈병원을 나서는데 비척거리며 통로를 나가는 이,

버스를 세워달란다.

오줌이 마렵다...

-그렁깨 타기 전에 누고 탔어야제

- 탈 때는 안 마려운걸 어떻게 눠

평생을 함께 살았을 이들 내외지간의 높낮은 핀잔과 공박을 들어가며 求禮口 다리를 지났는데

운전기사가 기겁을 하며 이런다.

- 지금 뭐하는것이다요

운전기사 바로 뒷좌석에 앉은 노인네가  휴지통을 가져다가

소변을 본 것.

남자도 아니면서

재주가 참 용한 노인네다.

그리고 나더니  이 노인네는 기어이  핀잔을 더 들었다.

- 비워 와야지 누구더러 비우라고 그냥 내리시요

비워낼 노인네라면 그런 소리를 듣겠는가. 

휴지통을 길에 내려놓고는 자기 갈 길을 간다. 

오래 산다는 것이 결코 축복이 아니다. 

    

 

우리 동네 대실댁은 장생댁의 아랫동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班常의 분간이 유별하고

內外의 구별이 분명하던 시절, 

긴 담뱃대와 상투가 있고 대밭 뒤에 3년 侍墓를 하던 집안이다.

러니 가풍을 이어내고  기품을 세우는 일은,

지금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선전댁은 雙山齊 오경영의 생모 되는 분인데,

선전댁이 오히려 고생을 했다면 했다고.

이런다. 

- 손톱 밑에 흙 안 묻히고 세상을 살았구마. 

죽기 전에 혼불이 나간다고 한다.

대실댁의 혼불도 마을사람에게 보여 이런다

- 두둥실 떠서 저수지 쪽으로 떨어지더라니까

 

그 대실댁이 아흔 생월 달에 죽었다.

자기 생월 달에 죽으면 온이 제명을 다 살고 간 것이라고 하니

천수를 누리다 가는 축복을 얻었다.

큰아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막내딸이 임종을 지켰다고 한다.

그래서 종신자식이 따로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아들 다섯에 딸 셋,

장례식장에 붙인 자손의 이름에 며느리가 하나, 사위가 하나.

저간의 사정은 말해 무얼 하겠는가. 

아흔 나이를 살아가며  애간장이 다 녹았을 분임에도

늘 평온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갔다.

내일이 안장일.

이 비는 내일까지 제법 내릴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