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

진주시 진성면의 반야재 시제

강정순 2007. 11. 25. 12:19

 

 


남해고속도로 진성톨게이트에서 머지 않은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375번지 동산부락
   
 

 


이곳에 20대조 부터 16대할아버지를 모신 반야재盤野齋가 있다
   

 

 

이곳은 조선건국초를 살다간 昌寧公(휘 友德)께서 터를 이룬 곳으로
31필지 6만 4천 토지를 훤히 꿰고 있는 月中씨가
[봉양재鳳陽齋 건립을 위한 사실적  근거자료집]을 갖고 왔다

그는 2019년 5월 14일

晉陽姜氏大同譜卷之一(진양강씨대동보 1권)과

晋州姜氏世譜卷之一(진주강씨 세보 1권)을 중앙종회에 기증한 바 있다.

진양강씨세보는 1964년에 발간된 박사공파 통정공 족보로 연천보'라 불리며

진주강씨대동보는 1973년 癸丑해에 발간 된 은열공파대동보 제 1권으로

이 모두 우리가 만져보지 못한 책이다 

 

 
 

 

간밤에 종회를 마치고

600년전 할아버지 발길이 수없이 닿았을,해돋는 아침을 이곳에서 맞았다

   
 
 


이성계로부터 죽임을 면하고 이 곳에 터를 이룬 20대조.

멸문을 피해 살아 남은 것을 두고, 역사는 비겁하다고 할 것인가.

위는 할머니

   
 
 


19대조 執義公  묘소에서 보면 왜 여기를 盤野라 불렀는지를 알수 있다

 

   
 
 


재실을 가운데 두고 우측에도 후대로 이어지는 선대 묘역이 이리있다

 

   
 
 

 

18대조 監役公(義範) 묘소는

구분할수 없어 여기다 설단을 하였다는데

 

 

   


17대 현감공(潭) 16대 습독공(壽海)도 제단비를 세웠다.

아버지 할아버지 무덤도 챙기지 못하면  후손으로 부터

야무지지 못한 조상으로 불림을 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