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 - 6월
6월 1일
30분 늦은 起床은 어제 끝난 종합훈련의 보상일 것이다.
당직사관이 환자를 조사한다. 내 세울 수가 없어서 그렇지 어떤가.
나는 지금 절룩거리며 걷는다.
1,2교시 종합시험을 졸며 보았다.
이어서 권총 기록사격. 마지막 사격이다. 탄약분배를 해주다 일곱 발을 더 얹는 행운을 얻었다. 열일곱 발의 曳光彈. 땅으로 꽂힌다 싶으면 위로 올라 흙먼지를 일으킨다.
5,6교시는 지휘법 시간인데 즉시 내무반에 가서 대기하라는 전달이 왔다.
무슨 일인가. 우 와~ 特泊이다. 누가 예상이나 했던가.
청소를 마치고 관물함을 封해 놓았다. 외출비로 나온 2천원.
대대장의 말씀에 주의집중이 될 리 없다. 이제 西大田驛이다. 내일 새벽이면 求禮에 닿을 터, 식구들과 보내는 시간도 단 하룻밤이다.
6월 4일
13주째. 저마다 특기과정 입과식이 있다. 70特技라 불리는 인사행정장교과정. 이제 主舞臺가 항공병학교에서 기술학교로 바뀐다. 學課場은 2층이다. 앞으로 두달간 이 곳에서 생활을 하게 된다.
1부 과정이 끝날 때마다 학과시험이 있는데 70점이 과락, 거듭되면 退校라는 설명이다.
6월 6일
화단에 물을 줄 일이 없어졌다. 천금같은 부슬비다. 중대본부로 잡초작업을 나갔다. 下士官후보생들은 이 빗속에 排球다.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어가며 휴일 같지 않은 휴일을 보냈다.
6월 7일
과정근무를 섰다.
" 인사행정장교초급과정 총원 51명. 사고 1명 현재원 50명. 사고내용 入室 1. 5교시 학과준비 끝 "
課程長은 귀청 떨어지겠단다. 節度도 좋지만 앞으로는 작은 소리로 하라 고 한다.
달라진 風俗圖다.
6월 9일
특수사관후보생 任官式에 참가하였다. 열두 명의 후보생이 法務장교 軍宗장교가 되어 나간다. 한동안 기본군사훈련을 함께 받았던 그들이다. 中尉로 임관이지만 이양길法師는 大尉 임관이다.
246兵棟으로 오는 그들을 향해 경례를 하니 '보고 생략' 하는 바람에 다함께 웃었다. 우리는 길가로 나와 迎送堵列을 하였다. 박수를 치며 부러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6월 11일
과정근무를 下番하였다. 이번에는 내무반장근무다. 다음에는 食器사역도 있다.
旗手근무도 서야한다. 肋間痛후보생은 서야할 것도 많다.
병원수진허락을 받는데 구대장이 왜냐고 묻는다.
" 네 肋間痛 때문입니다!"
" 그게 뭐냐?"
그 바람에 후보생들이 한바탕 웃어버렸다.
肋間痛후보생은 지금 아파 죽을 지경이다.
6월 15일
사령부본부를 돌아오는 거리인데도 등줄기가 축축하다.
通校를 돌아올 때가 좋았다. 구보는 역시 손시러운 아침이 제격이다.
탄띠에다 水桶을 차게 하더니 執銃으로 나오라고 한다.
民防空訓練이 있기 때문이다. 航空兵學校 변소 뒤 無蓋壕에 士官中隊
모두 들어가서 對空자세를 취하며 앉았다. 빈 하늘에 무슨 총구인가.
여기다 소변을 본 모양이다. 지린내가 진동을 한다. 민방공훈련 20분
간이 지린내참아내기 훈련이 되어버렸다.
다시 종합비상훈련이다. 공습과 적색경보에 따라 두 시간 동안 활주로에 나가 있었다. 내무반으로 오는 데 땀에 흙이 배도록 기합을 받았다.
엎드려뻗쳐. 방향전환. 精神弛緩이란 이유다.
" 다음부터는 절대로 이런 행동을 보이지 않도록, 알겠지?"
6월 16일
科落者 명단이 나붙었다. 起案紙 작성과 決裁는 실기. 65문제는 選多型. 여덟 명의 과락자는 지금 초죽음이다.
이제는 刊行物管理. 공부를 학과장에서 마치기로 하였다. 제대로 자고
싶다. 날마다 편지만이 유일한 解放區이더니 지금은 아니다.
내일은 다시 외출이다.
일석점호를 마치고 나자 당직사관으로부터 각 내무반 전달이다.
"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를 기원하면서 잠자리에 들도록!"
6월 20일
오늘로 100일을 맞는다. 그러니 百日特食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무슨 특식. 화려한 파티라고 할 수 있는 기합이 없으니 이보다 더한
백일잔치가 없다.
6월 24일
金容文과 함께 아카데미여관으로 갔다. 우리 내무반원들의 아지트가
그곳이다. 金鐘哲은 여자가 있다. 그래서 다른 여관으로 간다.
浴室이 딸린 방에서 우리는 願없이 샤워를 했다. 수박을 사오고 과자에 소주.
" 야, 적당히 마셔"
기준은 이렇다. 귀영후 당직사관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飽食때문인가. 한 잠 늘어지게 자고 났다. 여유로운 시간이다. 사진관으로 가서 우리 내무반끼리 기념촬영을 해두었다.
6월 25일
어제 밤에는 子正까지 명예위원장과 잡지발간에 대해 논의를 하였다. 지난번 詩畵작품도 있겠다, 저 마다 써놓은 修養錄도 있겠다, 여기에다 훈련 에피소드들을 모으면 훌륭한 67기 잡지가 되지 않겠는가. 해서 시작해본 일이다.
선임구대장이 문제다. 학교장의 허락은 선선히 받아낼 수 있을까.
더구나 OSI검열은 피할 수 없는 산이다. 그 산을 어떻게 넘어간다지?
6월 28일
빗소리에 잠이 깨었다. 판초를 꺼내 입었다. 깜깜한 복도. 불침번에게 암호를 물어봤다. 노루, 사망이란다. 노루 사망. 외워두지 않으면 動哨에게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다. 질퍽한 땅이다. 오랜 가뭄 끝, 이제 살았다.
과정장이 배속희망지를 묻고 간다. 내 희망은 대방동 敎材廠이다.
6월 29일
평가과장이 학과장에 나타났다. 졸다 자다하던 참이었다.
교탁에 올라서더니 일장 연설이다.
" 국가가 지금 風前燈火의 위기 앞에 놓여 있는데 국가의 干城이 되겠다는 사관후보생이 그까짓 졸음을 참지 못하여 졸고 있을 수 있는가"
교관 고유의 시간권한이다.
우리는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시멘트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 정신을 차리고 배워도 부족할 판에 그래 가지고 어떻게 인사행정장교가 될 수 있겠나"
평가과장님 우리는 지금 原山을 폭격 중인데요.
어이없어 하는 교관의 표정이 어둡다.
일어선 우리는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무릎을 꿇는 일이 또 한 번 있었다.
교관이 다시 자리에 섰다.
"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군대생활이 더럽다는 거……."
그는 자기의 권한을 빼앗겼고, 우리는 명예를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