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쌓은 돌탑

구절몽양도九折夢陽圖

강정순 2007. 1. 22. 17:23

                      

 

 

                 구절몽양도九折夢陽圖

 

 

 

 

 

도회의 번거로움을 떠나 강촌江村에 낚시를 벗삼을 제
칠월七月 장마 끝에 떠도는 부초 더미로다.
강江 건너 야영지에선 병정兵丁들 그림같이 저녁밥을 짓나니
시절은 어수선하여도 전원의 조용함을 사랑할 만하도다
일상사를 버리고 뜻을 한 가지로 모으건대
갑자기 상류에서 고함소리 들려 온다.
사람이 떠내려오는 데도 아무도 구하려 않는다니.
본시 사람의 일이란 제 몸 다스리기에 급하여
강江 건너 불을 보는 듯하는다.
장마에 유실되는 건 어디 전답과 가축뿐이겠는가.
치산治山을 멀리했으니 위인의 선정을 바랄 수 없고
치수治水를 게을리 했으니 일세의 현자가 있을 리 없도다.
낚시를 물리고 장줄로 몸을 매어 물길로 뛰어드는데
허리를 휘감는 물길이 마치 황룡의 난무로다.
장줄을 끌어다오. 그 또한 지호 간에 끊기니
함께 강안江岸으로 밀려난다.
기백을 잃기는 매양 한가지다.
숙지에 다달아 불을 피우고 숨길을 트게 하자
모여든 사람들이 물러가고 불빛은 더욱 밝아졌다.
불빛에 비친 노인의 몰골을 헤이기 어렵다.
어쩌다 노인은 용궁龍宮의 객客이 되려 했는가?
목놓고 한참을 슬프게 운다.

나는 본디 개성開城 사람으로 용정龍井에서 자랐다.
개성은 색향色鄕으로 풍류가 있어 날마다 아악雅樂이
그치지 않았다.
중화中華의 인삼 장수를 따라 황하에 온 후
어려이 말잡이로 곡마단에서 지냈다.
젊어서 영화를 누려 동가식東家食 서가숙西家宿하다 보니
몸은 폐하고 나이는 들어 고향에 왔으나
기왓장에 억새풀만 우거져 있었다.
난시亂時에 만난 아내는 남원南原 도공陶工의 딸로
정절貞節을 중히 여겨 마음이 대쪽 같았다.
사군자四君子를 잘 쳐 남도창南道唱과 함께 일품이었다.
난중에 인공군人共軍에게 밥을 해 주었다 하여 잡혀간 뒤로
여지껏 생사를 모르고 있다.
노인의 말을 듣고 내 이를 슬퍼하였다.
탐조등 강안을 비쳐들고 수심은 노인의 얼굴을 파고든다.

나이는 늘고 몸은 찬바람 일어
이 집 저 집 드나드는 신세가 되었으나
세상 인심이 전만 같지 못하여 세 치 앞날을 점占칠 수 없다.
아침은 이 집에서 따슨 물을 얻었으나
저녁은 또 어느 곳에서 찬이슬을 피할 것인고,
생각하면 한이 맺혀든다.
어느 가난한 이의 호의로 삼일三日 전에 요기를 하고
강江 건너 마을로 가던 차였다.
천상天上의 부름 같은 소리에 귀가 밝아 다리를 헛디뎌
그대와 같은 이를 만났다.
말을 마치자 노인은 잠 청해 든다.
원컨대 나의 스승은 뜻이 지고해
수십 년을 세상사와 등져 지내나니
노인의 한세상을 기탁코자 한다.
노인은 백 번 사양을 한다.
이 세상 모든 일이 덧없으니
나고 죽는 것 또한 정한 이치다.
노인과 내가 잠속에서 다시 만나 선문답하는데
깨어나 보니 노인은 없고
그 자리에 구절몽양도九折夢陽圖 한 폭이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