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제음五帝吟
내 핏속엔 짧게 살다간 아비의 피가 반쯤 있고 난리통에도 처연하던 한아비의 그림자 속엔 제 목숨 가꾸듯 기도하던 할머니의 넋도 있다. 청산에 팔 베고 누워 비파를 켜던 고모의 손마디 보며 눈물짓나니 운명이래도 이 설움 한할 순 없다. 호胡나라 적인가 왜구가 오고 로스케 가면 메리칸들 와선 끈끈한 살의 섞임 있어 처녀들 꽃뱀보다 더 능란한 피의 섞임 있어 북간도 떠나는 저녁 하늘도 이보단 덜 매웠다. 한아비가 하듯 제 아들 잡아먹고 울음 우는 문둥이의 새벽 하늘이 터오르고 한머니 예불 드리는 손짓으로 산초기름 마시던 고모의 천년 사직. 분때 진한 가시내 월담해 눈맞추면 오가피나무 사이로 강물은 흘러도 그믐밤…참 좋네요.
해가 지면 갈가마귀 우는 초당. 치자나무 세죽 총총한 중문 안에 선머슴들 모여 칼질이다. 담자색 환한 불빛은 그 끝을 비추이고 밤 깊어 송뢰 소리 끊임없어라 서쪽에서 온 조사祖師 정각경正覺經 외면 접신 들린 계집은 살 풀어내고 그런 고모의 당굿을 개기 월식은 비추고 있다. 운명이랄 것까진 없다. 버릴 일이다. 초경 치른 계집의 배 안 아이. 한아비가 머슴이어 종년한미 대대로 이어질 당집아이사 정결한 몸일랑 당집마님 올려 주고 깨끗한 피 받잡으면 산천을 기름같이 밝힐 것을. 가시내 원나라 잡혀간 가시내야, 다른 시절 나락 여무는 사도沙圖에선 이 땅에 여물 가시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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