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 년 전 화엄사 한 스님이
장륙전 중창불사重創佛事를 하려는데
어디서 시작의 처음을 할지도 몰랐으니
끝의 마침을 할 수가 있나
화주化主도 막막한 터에 기도 중 선몽先夢 받는 것이
걱정 말고 내일 아침 화주를 떠나다가
맨 먼저 만나는 이에게 시주를 권하거라
신새벽 만난 사람이 매양 일도 돕고 절 밥도 축내는 이
넋 놓고 망연스레 한참을 앉았는데 사연을 듣고 난 노파가
늪 속에 뛰어들며 한다는 말
이 몸 죽어 왕궁에 태어나 불사를 이루려니
문수文殊 대성은 가피를 내리소서
장륙전 중창불사를 어이할꼬
장륙전 중창불사를 어이할꼬
자나깨나 그 걱정으로 세월이 늙는데
이룬 것 하나 없이 장안에 나타났다
공주는 한쪽 손을 꼭 쥔 배냇병신으로 와서
그 속에 무슨 보배나 감춘 것처럼 펼칠 길이 없었는데
춘삼월 궁궐 밖에 봄이 먼저 와 있어서
나들이 길 유모 손잡고 나온 어린 공주를 보게나
우리 스님, 우리 스님
품에 안겨 반기는 데 스르르 펴지는 손에
장륙전 세 글자 있었겠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왕이 스님에게 청하는 말
장륙전 불사를 내 맡으이
장륙전 불사를 내 맡으이
왕을 깨우친 계파桂坡 대사가 있어 각황전覺皇殿은
화엄사 그 장륙전 터에 오늘로 우뚝 자릴 한다